
'천하가 어지러운데 …'
묘한 시기에 브릭스 정상들이 모였다. 브릭스는 소위 글로벌 경제 성장의 미래 한 축이다. 더욱이 모임을 주재한 이는 혼란의 주범이다.
바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범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 구질서와 신질서? 브릭스의 ‘천하 삼분지계’
브릭스(BRICS)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영어 이름 이니셜을 합친 단어다. 지난 2001년 월스트리은행이 새로운 경제 부흥국가들을 모아 부른 게 시작이 됐다.
브릭스정상화담은 브릭스 국가들만 모여 회담을 했지만 최근 참여국들이 하나 둘씩 늘어 조금씩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난 2023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한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 이후에 이집트·에티오피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의 브릭스 합류를 승인하면서 전 세계 GDP 규모의 약 37%까지 상승했다.
이번 2024년 브릭스 회담은 지난 22일 열렸다. 올 브릭스 정상회의는 알제리·인도네시아·베트남·튀르키예 등 무려 13개국에 파트너 국가(partner countries)라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외연을 더욱 확장했다. 이번에 초청받은 13개국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가입을 신청했던 30여 개국 가운데 선택한 곳들이다.
이미 지난해 가입국가들의 전체 경제규모를 합치면 BRICS회담국들은 현재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과 구매력을 조정한 세계 경제 생산량의 37% 이상을 차지한다.
글로벌 국제질서는 사실 경제력이 진정한 실력이다. 무력도 중요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래 무력은 국제무대에서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이제 총칼을 앞세워 타국을 식민지화하거나 침공해 착취를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 경찰을 자청하는 미국의 무력이 너무 압도적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크게 못미치만 핵전력만큼은 이미 치명적 수준에 다다른 러시아와 중국, 인도가 브릭스정상회담의 일원국이다.
결과적으로 브릭스는 글로벌 무대의 무력으로 미국과 유럽에 버금가며, 경제력으로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브릭스정상회담을 적극 나서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미국과 서구에 대항하는 세력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과 적대적이고, 미국 등의 압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수년전부터 미국과 무역 관세전쟁을 벌여왔다. 트럼프 정권 시절 시작됐으나 바이든 정권을 출범한 이래도 무역전은 아예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아예 배제하는 미국에 중국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러시아나 중국이나 우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군사동맹이, 중국은 경제 동맹이 절실하다. 러시아에게 아쉽지만 브릭스는 군사동맹과는 좀 거리가 있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중국의 군사적 지지다.
하지만 중국이라고 그리 단순한 나라는 아니다. 공산혁명이래 러시아랑 가장 가까우면서 먼 관계를 유지해왔다. 서로 총질도 마다하지 않았던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다.
# 지는 해와 뜨는 해?
브릭스는 성숙된 글로벌 경제에서 성장을 하는 경제체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은 다르다. 유럽과 일본이 만나는 소위 글로벌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의 위상을 보면 그 이유를 안다.
지난 1995년 44.9%였던 G7국가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023년 29.9%로 하락하며 30% 선이 붕괴하였다.
반면 동기간에 브릭스의 점유율은 16.9%에서 약 2배 가까운 성장을 보이며 32.1%를 기록했다. 여기에 브릭스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가가 여전히 많다. 실제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여한 국가가 36개국에 달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을 포함해 6개의 국제기구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브릭스가 뜨는 해면, G7은 지는 해인 것이다. 유럽과 브릭스의 위상 변화다.
# 글로벌 질서 개편?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를 지켜보는 관점은 크게 크게 두 가지다.
브릭스의 확대를 미국과 유럽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 대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중국이 중심이 되어 남반구 국가들(글로벌 사우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 소위 서구의 압박을 받는 러시아와 중국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또 바로 이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만남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최대 관심사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지다. 러시아는 이미 북한을 참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 평가를 하자면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혹독히 패전을 했다. 일단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2년이상 전쟁을 끄는 것 자체가 실패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가 잃는 게 더 크다. 무엇보다 일설에 러시아 장병 6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푸틴에게는 전쟁이 이대로 끝이 난다면 적지 않은 정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전쟁은 국민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을 주지만, 전쟁이 끝나면 상황도 끝이 난다. 전쟁 후 러시아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가장 두려운 사람이 푸틴일 것이다.
# 글로벌 질서 개편의 분수령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담을 했다.
중국은 이번 브릭스정상회담 직전에 인도와 국경 분쟁 등 거의 모든 분쟁에 대한 조정을 했다. 브릭스에서 강한 우방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절실한 것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브릭스정상회담이 강력한 경제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서방이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면 중국에게도 나쁠 것은 없다.
베를린 카네기 러시아 및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드르 가부에프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의 반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구 세계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선봉"이라고 묘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브릭스는 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가장 강력하고 대표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관료,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강조한 메시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역시 “세계는 다시 한 번 글로벌 남반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모스크바 모두 BRICS가 더욱 확장되기를 열망하고 있으며, 크렘린궁은 올해 정상회담에 관심을 표명한 20명의 대표를 추가로 초청했다. 두 나라 모두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를 제안했다.
이전 정상회담에서는 브릭스 통화 창설이 논의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올해 주요 제안은 러시아가 세계 무역에서 자금을 받고 지출하는 데 있어 제재 관련 문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BRICS Bridge’라고 불리는 BRICS 지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도 IMF를 대체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지지를 독려하려고 노력했다. IMF는 지난 2022년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동결했다.
자연히 이번 브릭스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이벤트는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이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두 지도자 간의 네 번째 회담이 다. 두 지도자 모두 미국에게는 깊은 불만을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이다. 베이징에 본부를 둔 세계화 싱크탱크의 왕후이야오는 “모든 국가는 이번 동맹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브릭스가 매력적인 이유”라며 “중국은 브릭스 중 가장 큰 경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BRICS에 대한 중국의 우선순위 중 하나는 주요 지정학적 라이벌인 미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룹을 계속 확장하는 것이다.
중국과 서방의 관계가 다양한 문제로 인해 악화됨에 따라 중국은 아프리카와 남미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은 이미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한 필리핀은 아예 포기를 하고 베트남과는 그동안 갈등을 청산하고 우호를 증진시켰다.
하지만 중국이 인도를 미국에게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나 남미 개발도상국들을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어찌보면 아직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이 매력적인 나라지만, 세계 어느나라도 미국과 멀어져서는 경제적 이익을 구축하기 힘들다.
실제 브릭스정상회담 직전에 있었던 브릭스 외무장관들은 당초 예상됐던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못했다. 브릭스의 의견을 모으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다.
주로 남반구의 리더십을 놓고 중국과 인도 사이의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이란 등 고립된 반서구 국가들의 지원에 의존할 수 있지만, 이 단체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미국에 대해 보다 적대적인 입장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게 국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새로운 국제 결제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소위 ‘중동오일’의 주인공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뜨뜨미지근이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브릭스(BRICS) 가입 초청을 받았지만 정상회담에는 가입하지도,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2월 리야드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을 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유가 풍부한 나라는 러시아와의 관계와 미국 및 다른 서방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사실 글로벌 정치는 변한다. 미국도 처음부터 오늘날의 미국이 아니었고,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가 처음부터 오늘만 같지는 않았다.
오늘의 미국이 영원하지도 않고, 오늘의 러시아나 중국이 내일도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 최소한 러시아는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있지만, 중국은 미국의 변화에 맞춰 꾸준히 미국 규제의 틈을 파고 들어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브릭스의 다른 지도자들이 만만한 것도 아니다. 인도만해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오가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절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집권해 2025년 1월 러시아로부터 브릭스 순회 의장직을 물려받아 브릭스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게 됐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그의 첫 두 임기 동안 룰라는 블록 설립을 도왔으며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더 큰 협력을 큰 소리로 촉구했다.
글로벌의 변화가 이어지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