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밤의 빛나는 별이 되다
“왜 죽으냐 물으면 지쳤다 하겠다.”
지난 18일 스스로 삶을 마친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지인에게 남긴 유서에 담긴 내용이다. 이는 마치 유서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 두드러진 면모를 보였던 종현이 쓴 노래 가사 같다.
당초 종현은 사망 직전 친누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제까지 힘들었다. 고생했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뜬 하루 뒤인 19일 종현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친분을 맺었던 그룹 디어클라우드 멤버 나인이 자신의 SNS에 “종현 본인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 글을 꼭 직접 올려달라’고 부탁했다”며 “이런 날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가족과 상의 끝에 그의 유언에 따라 유서를 올린다”며 글을 게재했다. 결국 종현이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장기간 고통받아왔다는 증거다.
Ⓒ SM Entertainment
실제로 우울증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진 종현은 “난 오롯이 혼자였다. 난 도망치고 싶었어. 나에게서. 너에게서”라며 “왜 죽으냐 물으면 지쳤다 하겠다”고 적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며 “막히는 숨을 틔울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 게 나아”라는 글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샤이니의 리드 싱어였던 종현은 지난 2008년 싱글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했다. 이후 ‘링딩동’, ‘루시퍼’ 등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고 솔로 앨범도 내며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이하이 ‘한숨’, 아이유 ‘우울시계’, 엑소 ‘플레이보이’ 등 다른 가수들의 곡에도 참여했다.
데뷔 당시 한 매거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종현은 “저는 제가 28살 정도 되었을 때를 꿈꿔요”라며 “스스로 10년 이후에는 꼭 좋은 뮤지션이 되자고 약속했거든요”라고 밝혔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그는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 한류스타로 우뚝 섰다.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세상에 없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그 배경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팍팍한 삶이 숨어 있다. 연습생 시절에는 스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매진하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 정작 정식 데뷔 후 스타가 돼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타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잠을 쪼개가며 연습하고 또 공부한다. 팬들의 관심도 독이 된다. 20대 또래들이 그렇듯이 여행을 가거나, 누군가와 교제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평범한 삶조차 꿈꾸기 어렵다. 이러니 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도 마음은 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19일(현지시간) 종현의 사망을 통해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받는 중압감에 대해 “한국의 연예산업은 강한 압박으로 유명하다. 마치 ‘헝거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영화로 제작됐던 <헝거 게임>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을 펼치는 내용을 담았다. 그만큼 한국 연예계가 정글 같은 곳이란 의미다.
Ⓒ SM Entertainment
19일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그의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동료인 보아, 소녀시대, 엑소, 레드벨벳, 슈퍼주니어 멤버들을 비롯해 방탄소년단, FT아일랜드, 아이유, 빅스 등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소속사가 팬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분향소에도 교복을 입은 팬들이 줄을 이었다.
외신 역시 사망 소식을 긴급히 타했다. 영국 BBC는 ‘K-팝 슈퍼스타의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미국 음악전문매체 빌보드는 “그는 진정한 재능을 가졌고 창의적이었다. 오래도록 그리워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 역시 “샤이니의 리드 싱어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며 주요 뉴스로 다뤘다.
기자 김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