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의 비밀지하벙커가 전시관이 되었다. Sema 벙커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당시 대통령 경호를 위해 지어진 비밀 벙커였지만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위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여의도. 여의도 시민공원 외에는 특별한 여가 장소가 없던 여의도에 문화예술적 감각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던 지하 공간, 비밀의 문이 열리다
2005년 여의도 일대가 떠들썩해졌다. 서울시가 여의도에 버스환승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현지 조사를 진행하던 중 지하벙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어디에서도 이 지하벙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관 부처가 없음은 물론 국토교통부와 수도방위사령부의 등 어느 부처에서도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발견 당시 벙커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내시경을 넣어 조사한 끝에 벙커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체 공간은 소파와 화장실을 갖춘 VIP실(20평)과 지휘대 및 기계실이 있는 수행원 대기실(180평) 및 3개의 출구로 구성돼 있었다. 관련 기록물은 없지만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항공사진 확인 결과 벙커의 출입구가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에 벙커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5·16광장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을 당시의 사열대와 벙커의 위치가 일치한다는 점을 볼 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사시 요인 대피용 방공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复原了地堡发现时放置在这里的沙发,供访客体验的SeMA地堡历史画廊。
과거 권력자의 공간 그 모습 그대로, 역사갤러리
비하인드 스토리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하 벙커가 내부 손질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 SeMA벙커로 탈바꿈했다.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출 형태로 천장을 마감해 천장 높이를 높였다. 또한 벽면을 흰색으로 칠해 ‘비밀 지하 벙커’라는 어두운 분위기를 벗고 한층 밝고 환한 분위기로 변신했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는 살렸다. 전시장 안쪽 공간에 역사갤러리(VIP실)을 만든 것이다.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방에는 발견 당시 나온 소파를 비슷한 형태로 복원해 시민이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세면대와 좌변기를 비롯한 화장실 시설물을 그대로 두었다. 발견 당시 나온 열쇠 박스도 복원해 전시했다. 이 공간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한 박물관을 넘어 역사 갤러리로 활용된다. 개관 당시 전시되었던 윤지원 작가의 영상 작업물 <나, 박정희, 벙커>를 시작으로 ‘SeMA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SeMA벙커의 201 8년 첫 기획 전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SeMA벙커는 이 공간이 갖는 특수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역사 및 인권관련 전시를 주로 기획하고 있다. 201 8년 첫 기획전은 일제강점기 강제 노동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을 개최했다. 3·1운동 99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 전시는 지난 2015년에 전시된 <70년만의 귀향>의 연장이다. 1996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본 훗카이도에서 한국과 일본의 민간 전문가들과 학생, 청년들이 함께 발굴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115구를 고향의 품으로 돌려보낸 ‘70년만의 귀향’ 사업 과정이 담긴 것이다.
작가 손승현은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으로 재현했다. 또한 작품과 더불어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자료들도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성해 선보인다. 데이비드 플래스의 다큐멘터리 ‘So Long Asleep’은 ‘70년만의 귀향’ 과정을, 송기찬의 다큐멘터리 ‘Another 고향’은 유골발굴에 참여했던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에 관한 인터뷰를 담았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은 3월 1일 SeMA벙커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4월 15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이후 8월,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로 전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동경 기자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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