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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중국국가(国歌)는 왜 비장한 가사(歌词)로 돼있나?

의용군행진곡(중국국가)의 탄생배경과 21세기에서의 의미를 반추해본다.

 

중국국가는 짧다.  딱 46초다.

 

우리처럼 1,2,3,4절도 없다.

 

아래 가사가 전부다. 내용도 명료하다.

 

起来!

不愿做奴隶的人们!

把我们的血肉,筑成我们新的长城!

中华民族到了最危险的时候,

每个人被迫着发出最后的吼声。

起来!

起来!

起来!

我们万众一心,冒着敌人的炮火前进!

冒着敌人的炮火前进!

前进!

前进!

前进!进!

 

일어나라 ! (깨어나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이여 !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만들자 !

중화민족이 큰 위험에 빠졌으니, 

일제이, 마지막 울부짖음을 내 뱉을 때가 되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모두 한 마음으로, 적진 포화에 맞서 전진하자!

적진 포화에 맞서 전진하자!

전진 !

전진 !

전진 ! 나가자 !

 

중국국가의 별칭은 의용군행진곡 <义勇军进行曲> 이다.

 

이 노래는 상하이에서 1935년에 제작된  '풍운남녀' 《风云儿女》라는 영화에 삽입된 제 1주제곡, 즉 ost 인 셈이다.

 

가사는 한 눈에 봐도 전투적이고 비장하다. 들어보면 힘차고 울림이 장엄하다.

 

이런 내용과 느낌의 주제곡이 삽입된 영화라면, 영화스토리도 감이 잡힌다.

 

거기다 이 영화가 개봉됐던 1935년 당시의, 상하이와 중국상황을 보면 영화의 배경이 더 명료해진다.

 

 

당시 상하이의 주요구역은, 이미 영국 미국 프랑스의 행정권과 치외법권이 보장된 서양 강국들이 식민지였다.

 

아편전쟁직후 1842년에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는 1845년 11월부터 각자의 식민도시를 상하이에 건설했다. 상하이는 이런 모양으로 1943년까지  성장하고 발전을 거듭한다.

 

상하이 관광때 쉽게 불 수있는,  황푸지앙(黄浦江)강변과 시 중심의 웅장한 서양식 신고전주의 석조건물들의 풍광은, 모두 이 상하이조계시절에 만들어 졌고, 무려 백 년가까이 서양열강이 주인이었다. 

 

 

1932년에는, 영 미 프랑스가 지배해온 상하이에 일본군까지 들어온다.

 

일본은, 이미 1831년 만주사변으로 동북3성을 다 점령한 이후, 이듬해 제 1차 상하이사변을 일으켜상하이 조계의 영 미 프랑스 군을 제압하고, 상하이 일대의 중국인들을 학살하고 약탈을 자행한다.

 

중국인이 중국의 주인일텐데, 서양 제국주의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서로 중국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중국을 황페화시키고 있었다.

 

 

또 한 편으로 상하이는 비록 식민지였지만, 서구의 발달된 문화와 재화 사람 사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 아시아의 뉴욕이었으며 당시 중국의 핵이었다.

 

여기에 봉건사회에서 해방된 중국대륙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각처에서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21년, 중국공산당이 상하이에서 기치를 들었다.

 

 다시 우리의 주제인 영화 '풍운남녀' 《风云儿女》로 돌아간다.

 

풍운남녀는, 이런 상하이에 사는 중국 젊은이들이 가졌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중국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시대적 애국심등을 담고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풍운의 시대 화려한 상하이속에서의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고, 결국 나라를 구하는 전선으로 향하는 고뇌와 결단의 과정을 그린, 일종의 사상극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티엔한 ( 田汉 1898—1968) 이 썼다. 당시 37살의 티엔한은 중국공산당원으로서 상하이문화예술계의 문화선전담당이었고 , 풍운남녀 제작을 기획했다. 

 

그는 일찌기 일본유학시절 스스로를 '미래중국의 입센' ( Henrik Ibsen , 노르웨이 대문호 '인형의 집'작가) 으로 칭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 났다고 한다.

 

귀국후 공산당이 입당한 티엔한은, 장편 시 ' 만리장성 <万里长城>'등의 작품활동을 통해 중국인의 사상개조를 위한 문화투쟁을 전개했다.

 

풍운남녀를 기획한 그는 자신의 시 만리장성의 뒷부분 일부를  영화주제곡의 가사로 만들어, 당시 상하이의 음악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니에얼에게 작곡을 의뢰한 것이, 현재까지 중국국가의 가사로 전해오는 것이다.

 

티엔한은 신중국 성립후에도 '중국현대희곡의 3대 명사' 로 불릴 정도로 문화계의 거두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문화대혁명의 광풍속에서 박해받다 1968년 옥사했다. 

 

 

주제곡의 음악은 니에얼 ( 聂耳 1912 -1935 ) 이 작곡했다. 그는 중국남부 운남성의 성도 쿤밍에서 사범학교에 입학한 음악신동으로, 특히 바이올린 작곡과 연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사범학교 졸업후 특전으로 베이징 음악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미 쿤밍에서 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면서 사회와 시대에 눈을 뜬 니에얼은, 현실속의 문화활동을 위해 18살때인 1930년 상하이로 건너가,  영화와 연극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상하이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게된 니에얼을, 당시 상하이시의 사회주의 문화투쟁을 하던 티엔한의 소개로, 1933년 중국공산당에 정식 입당한다.

 

입당 이후 니에얼은 ,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의 혁명가요 수 십곡을 작곡했고 그의 음악스타일은 오늘날까지 중국공산당의 혁명음악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니에얼은, 1935년 봄 일본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티엔한으로부터 풍운남아의 주제곡 작곡을 의뢰받는다.

 

그 가사와 극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던 니에얼은, 현지에서 오늘날 중국국가가 된 행진곡의 악보를 작성해 상하이로 보냈다.

 

 

당시 보냈던 악보의 제목은 그냥 진행곡( 进行曲, 행진곡)이었는데, 곡으로 만들어지 상하이의 동료들에게 회람되는 과정에서 앞에 의용군 이란 세글자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작 니에얼 본인은 이 영화와 주제곡을 영상으로 감상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을 작곡하지 얼마 되지 않은 1935년 7월에 유학중이던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해변에서 사고로 익사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영화개봉이후, 상하이는 물론 중국전역에서 큰 유행을 일으켜, 소련 프랑스등 전세계의 공산주의 진영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애창되었고, 항일전쟁중에는 인민해방군과 국민당군이 모두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1949년 6월, 국공내전에서 승기를 확정지은 중국공산당은 10월 1일 신중국선포식을 갖기로 결정한다.

 

이후 신중국의 국기와 국장 그리고 국가를 확정하는 회의가 수차례 진행되었고, 여기에는 의용군행진곡의 작사자인 티엔한( 田汉) 을 포함한 당시 공산당 문화계 지도자들이 포진해, 의용군행진곡을국가로 추천해 마오쩌둥 주석 저우언라이 총리등의 최종승인을 얻는다.

 

1949년 9월 27일 제 1차 전국정치협상회의 전체회의는 , 중화인민공화국 수도를 베이핑( 北平,베이징의 과거이름)으로 정하며 동시에 베이징( 北京)개명할것과 함께, 국가를 의용군행진곡으로, 국기를 오성홍기로 할것을 확정한다,

 

이런 곡절 끝에 '의용군행진곡' 은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에 천안문광장에서 진행된 신중국성립 선포식에서, 마오쩌동 주석의 신중국 선포에 이어, 중국국가의 자격으로 처음으로 천안문광장에 울려퍼지게 된다.

 

중국근대사에 있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탄생된 의용군행진곡 즉 중국국가는, G-2가 된 21세기 오늘에도 14억 인민들에게,  일어나라! 깨어나라! 전진하라! 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난 4일 홍콩입법회을 통과한 중국국가법에 관한 홍콩조례는, 지난 12일부터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