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훗날의 결과가 그 이유를 알게 해 준다” 흔히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 한다. 고난이 쓰면, 열매는 더욱 달다 한다. 하지만 방황이 길어 결심이 옳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긴 방황의 경험들이 훗날 유익한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게 일반인의 정서이고 생각이다. 누구도 방황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삼성그룹을 세운 이병철은 달랐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병철은 돼지도 키워보고, 고급 야채도 재배해본다. 하지만 농사일이라고 해보지 않은 이병철이 지시만 해서 하는 농사가 성공할리 없었다. 자연이 일들이 흐지부지되고 이병철은 당대 돈 많은 한량들이 그러했듯 노름에 빠진다. 그렇게 낮에 나가 밤 늦도록 골패를 하다 달밤에 그림자와 돌아오는 일상을 보내던 날, 이병철은 홀연 달빛에 이끌려 잠든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돌연히 깨닫는다. “아,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 집안 일, 농사 일이 아니어도 뭐든 해야 한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병철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사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요즘 같은 사업은 없었다. 아니 없었던 것이 막 생기던 시점이었다. 무슨 말인가? 조선 왕조시대와
한국 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협상의 달인이었다. 그는 협상을 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냈다. 한국 정부는 물론 일본, 독일 등 외국 정부의 지원도 이병철은 협상을 통해 이끌어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를 놓고 단순히 “정경유착을 통해서”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다. 무엇보다 정경유착 부분만 봐도 각 시대마다 이병철 보다 더 정권에, 권력에 유착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현재의 삼성보다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정경유착이라는 게 그렇다. 한국같은 민주 사회에서 10년 이상을 가는 권력은 없다. 이승만,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50년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니 정경유착은 반드시 말로가 비참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전 정권과 유착을 했던 이들이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병철은 시대를 넘어 매 정권마다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승만 정권은 결국 당대 이 땅에 있던 은행 5곳의 지분을 이병철의 삼성에 넘겼다. 이어 4.19 혁명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탄압을 받았지만, 이병철은 당당했다. 당시 하늘의 새도 떨어뜨
‘이병철은 화가다. 하얀 도화지에 연필 하나로 세상을 그려낸다.’ 호암 이병철의 생을 연구하다 얻는 생각이다. 이병철은 창조자다. 요즘 많은 이들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혁신가 기존에 것을 새롭게 바꾸는 데 그친다. 반면 창조자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다르다. 이병철은 그런 창조적인 사업가였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하나씩 그림을 그렸다. 그가 화가 이상인 것은 화가의 그림은 그림에 머물지만, 이병철이 그린 그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청사진이었고, 현실에서 구현됐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세상에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한국이라는 가난한 나라의 조그만 마을의 기업에서, 한국 제일의 기업으로, 이어 아시아를 넘어 미국의 기업들과 당당히 세계 1,2위를 다투는 기업이 됐다. 왜 이병철이었을까? 그 수많은 한국인 가운데 왜 하필 그였을까? 이병철은 무엇이 달라서 가능했을까? 울산비료공장 건설에는 그 비밀의 일단이 숨어있다. 한국 울산비료공장은 한국에서 공장을 지어 ‘세계 최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곳이다. 본래 이승만 대통령시절 이병철이 기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19 혁명이 났고, 곧 5.16 혁명이 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