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 인물탐구 <9> 깊어지는 장칭의 한(恨)

  • 등록 2023.05.04 15: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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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마오쩌둥과 허쯔전의 부부 관계가 유지되는 한 장칭은 마오쩌둥의 부인이 아니다. 둘째 장칭은 마오쩌둥의 생활과 건강을 챙기지만 공산당 중앙에 어떤 요구도 할 권한이 없다. 셋째 장칭은 20년내 당 중앙에서 그 어떤 직책도 맡을 수 없다. 당의 인사문제 및 정치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이 장칭(江青)에게 마오쩌둥과의 결혼 전제 조건으로 내건 이른바 '약법삼장(约法三章)'의 골자다. 일단 장칭도 받아들인다. 그래서 마오쩌둥과 꿈같은 신혼생활을 한다. 곧 딸 리나(李娜)를 낳았고 마오쩌둥은 그 딸을 너무도 예뻐했다.

 

 

그렇다면 장칭은 약법삼장을 마음으로 승복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장칭은 딸을 낳은 후 마오쩌둥과 한방을 쓰지 않았다. 공개 장소에서도 자주 다투기까지 했다.  공산당 자료에 따르면 장칭은 마오쩌둥이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된 뒤 만났기에 대장정 등 고난을 함께한 시간이 없었다. 그 결과 마오쩌둥의 사랑은 얻었지만 동지애는 얻지 못했다. 약법삼장은 서로간의 깊은 정이 없었던 마오쩌둥과 장칭의 관계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마오쩌둥은 장칭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약법삼장을 철저히 지켰다. 마오쩌둥은 항상 집의 서재에서 해외 귀빈을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장칭의 모습은 없었다. 일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되었지만 그림자조차 드러낼 수 없었기에 매 순간이 장칭에게는 고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월 마오쩌둥이 충칭(重庆)에서 국민당의 장제스(蒋介石)와 국공 담판을 할 때 장칭 역시 따라갔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장칭은 마오쩌둥을 멀리서 지켜볼 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기자들이 물으면 "나는 치과 치료를 받으러 충칭에 왔다"고만 답해야 했다.
당시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龄)은 장칭과 달랐다. 중화민국의 국부 쑨원(孙文)의 처제로 출신 성분부터 달랐던 쑹메이링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연일 신문 지상에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다. 장칭은 마오쩌둥의 그늘 속에 숨어 쑹메이링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본래 질투는 미움이 되고, 미움이 쌓이면 한이 되는 법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는 날은 장칭에게 바로 미움이 한이 된 날이었다.

 

 

이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공산당 중앙 간부들은 모두 베이징 톈안먼(天安门) 위에 오른다. 마오쩌둥은 이날 떨리는 목소리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한다. 30만 명이 운집한 광장은 붉은 깃발과 꽃들로 가득했다. 이런 성대한 개국 행사가 열리는 날 장칭은 톈안먼 성루에 오르지 못했다. 사실 저지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장칭은 이날 톈안먼 성루에 오르고자 시도를 한다. 스스로를 '중난하이(中南海) 사무실 주임'이라고 소개한다. 경비가 이 사실을 개국 행사 총경비를 맡은 지휘부 책임자에게 보고를 한다. 당시 지휘부 책임자는 뤄루이칭(罗瑞卿)이었다. 뤄루이칭은 보고를 받고 매정하게 딱 한마디를 한다.

 

"규정대로 해(照章办事)!"

 

결국 장칭은 톈안먼 성루에 오르지 못하고 저지당한 채 돌아서야 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발발 이후 뤄루이칭은 첫 번째로 숙청된다.

 

더욱 장칭의 마음을 다친 것은 그해 연말 마오쩌둥의 소련 방문이었다. 마오쩌둥의 생애 첫 해외순방에 동행한 여성은 장칭이 아니었다. 쑨원의 부인인 쑹칭링(宋庆龄)이었다. 장칭은 쑹칭링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고, 쑹칭링 역시 권력을 탐하는 장칭을 좋게 보지 않았다.

 

 

이후 중국에는 수많은 외국 지도자들이 부인과 함께 방문했지만, 장칭은 약법삼장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칭은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반발할 수도 없었다. 1962년 9월 24일 류샤오치(刘少奇) 주석이 그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와 함께 소련 지도자를 영접하는 사진이 인민일보(人民日报)에 실렸을 때도 장칭은 마음 속으로 질투와 분노를 삭혀야 했다. 장칭 전기인 '장칭전'에 따르면 이때 장칭은 왕광메이를 반드시 밑에 두고 말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장성배 dayoff91@kochin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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