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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줌, 술 한잔

달아, 언제나 그렇게 있어주렴. 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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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天有月来几时, 我今停杯一问之。
qīng tiān yǒu yuè lái jǐ shí, wǒ jīn tíng bēi yī wèn zhī 。
人攀明月不可得, 月行却与人相随。
rén pān míng yuè bú kě dé, yuè xíng què yǔ rén xiàng suí 。
皎如飞镜临丹阙, 绿烟灭尽清辉发。
jiǎo rú fēi jìng lín dān què, lǜ yān miè jìn qīng huī fā 。
但见宵从海上来, 宁知晓向云间没。
dàn jiàn xiāo cóng hǎi shàng lái, níng zhī xiǎo xiàng yún jiān méi 。
白兔捣药秋复春, 嫦娥孤栖与谁邻。
bái tù dǎo yào qiū fù chūn, cháng é gū qī yǔ shuí lín 。
今人不见古时月, 今月曾经照古人。
jīn rén bú jiàn gǔ shí yuè, jīn yuè céng jīng zhào gǔ rén 。
古人今人若流水, 共看明月皆如此。
gǔ rén jīn rén ruò liú shuǐ, gòng kàn míng yuè jiē rú cǐ 。
唯愿当歌对酒时, 月光长照金樽里。
wéi yuàn dāng gē duì jiǔ shí, yuè guāng zhǎng zhào jīn zūn lǐ 。

 

 

 

맑은 하늘에 언제 달이 떴지?
잔을 들어 달에 묻네.
가고파도 못 가지만 달은 항상 우리 곁에.
거울 같은 달 속엔 궁궐이 비치고.
달 빛은 녹색 연무 속에 빛나네.
저 달은 언제 질까? 알고 싶지만
보는 건 언제나 바다 위에 뜬 달.
달 토끼 약 방아질에 어느새 가을 가고 봄.
달 토낀 방아질 한다지만, 
달 미녀 항아는 외로워 어쩌나.
오늘 우린 옛 달을 못 봤지만
저 달은 옛사람도 비췄지.
앞뒤 물결처럼 그리 떠가는 게 인간사,
달만 한결같네.
이밤 그저 원하는 건 
술 한 잔에 노래 부를 때
달아, 언제나처럼 
이 술잔을 비춰주렴.

 

 

 

결국 손을 들었다. 본래 이렇게는 한시를 정말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한자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한자가 쭉 늘어선 모양은 숨이 딱 막힌다. 익숙지 못한 이에게는 오죽 하랴. 그래서 가능한 짧게 시감이 절정인 부분만 소개하고자 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이 시는 그렇게 소개할 수가 없었다.
시의 구절 구절이 다 좋다. 구절 구절이 다 가슴을 파고든다. 그 좋은 구절 구절이 모여 정말 애틋한 시경(詩境)을 만들어 낸다.
그 시경을 전하기 위해 결국 전 시를 한 번에 다 소개하기로 했다. 

 

 

 


이백의 '술잔을 들어 달에게 묻다'(把酒问月)이다. 앞 첫 구 시상(詩想)은 소동파의 시구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어지는 대비에서 그 차이를 살폈다. 사실 이 시의 각 구절 시상들은 다른 시인들의 시 속에서도 나타난다. 
이백의 시에서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다른 시인의 시 속에서는 시감의 절정을 이룬다.
다른 시들의 절정들만 모아 놓은 게 바로 이 시인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백의 시는 쉽다. 인생의 절묘한 감상을 너무 쉽게 풀어준다. 낮술에 거하게 취한 시인이 보니, 어느새 달이 떠있다. 이 밤 유독 달이 밝다.

 

참 예쁘구나 달아. 너 언제 떴지?”  

 

 

그래 시인은 술잔을 들어 묻는다. 저 예쁜 달에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그게 어찌 가능할까? 그런데 저 달은 밤만 되면 나타나 나를 졸졸 따른다. 만리타향 홀로 떠도는 나그네에게 어디 이런 친구가 있으랴.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달은 나만 비추지 않았다. 나만 따르지 않았다. 나 보다 앞서 만 리 타향을 떠돌던 나그네를 비췄다. 궁금증이 생긴다. '저 달은 언제부터 그렇게 이 강변을 비췄을까?' 

그러고 다시 본 달이 더 신비롭다. 달 속에 궁궐이 있는데, 그게 이 땅 위 궁궐을 비치 건지, 아니면 달 속에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달빛은 더욱 신비롭게 밤 안갯속에 몽롱하게 빛난다. 오늘따라 시인의 상념이 끊이지 않는다. 

 

 

이 달은 지면 어디로 가지? 

  

 

그러고 보니, 술꾼 이백은 지는 달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술 취해 달과 그림자를 불러 함께 놀았지만, 깨고 나면 모두 각자의 길로 가버린 뒤였다. 
사실 시인은 이렇게 직접 달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 아침 새벽 여명이 언제 사라지는 못본다고 했고, 겨우 저 바다의 밤이 오는 것만 본다고 했다. 새벽 여명은 아침 햇살의 기운이면서 달의 마지막 순간이다.
결국 시인 보고 싶었던 것은 달의 마지막 모습이다.  

한 잔 또 한 잔 꽃을 세듯 
술을 마시는 시인의 눈에 달 토끼의 방아질이 마치 시계추 같다. 
그렇게 저 달 속 토끼는 사시사철 쉬지 않고 방아질을 했다. 
'토끼야 원래 그렇다지만, 저 궁궐에 사는 항아는 어쩌지? 누가 있어 그 외로움을 달래줄까?'

 

 

그런데 이 질문은 내가 처음 하는 것일까?”  

 

 

이미 옛 나그네가 했다. 당장 이백보다 한 세대, 41년 선배인 장약허가 같은 질문을 시로 남겼다. 
"아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저 강물 같구나. 앞뒤 물결처럼 모두 흘러만 가고 돌아오지 않는구나"
이 탄식마저 이백이 혼자 한 게 아니다. 이백이 그토록 좋아했던 맹호연도 같은 탄식을 했다. 
이백은 탄식마저 인간사에 되풀이됐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시인은 겸허해진다. 여기서 이백만의 독특한 호방함이 나타난다. 저 한결같은 달이 고맙지 뭘 더 바랄까?

 

그저 앞으로도 내 술 마실 때 그렇게 있어만 주렴. 

 

역시 이백이다. 인생사 이보다 근사한 바람이 또 무엇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