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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줌, 술 한잔

이 가을, 저 산에겐 몇 번째 가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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闲云单影日悠悠, 物换星移几度秋. 
xián yún dān yǐng rì yōu yōu, wù huàn xīng yí jǐ dù qiū.
阁中帝子今何在, 槛外长江空自流.
gé zhōng dì zǐ jīn hé zài, kǎn wài zhǎng jiāng kōng zì liú.” 

 

 

 

한가로운 조각구름 
긴 그림자 드리우고,
별 따라 꽃 피고 지고
이 가을, 저 산에겐
몇 번째 가을일까?
누각에서 놀던 귀족 
오늘은 어디 갔나?
강물만 무심히 흐르네.

 

 

 

하늘가 벼랑에 한그루 소나무가 서있다. 척박한 땅에 자라 이리저리 비틀어지고 꼬부라졌다. 
그런데 잎은 푸르다. 바로 그 위를 구름 한 조각이 한가로이 떠간다.
숱한 세월, 별이 뜨고지고 솔은 늙어가도 산은 만년을 그대로고, 그 앞 강물은 천년을 두고 흐른다. 

 

 

 


 

 

남성의 굵은 목소리로 부르는 선구자 한 대목을 연상케하는 시다.  초당 시인 왕발(王勃;648~675)의 등왕각 (藤王阁)이다. 
왕발은 노조린, 낙빈왕, 양형 등과 함께 초당 사걸로 불리는 인물이다.
자는 자안(子安)으로 약관의 나이에 급제해 벼슬 길에 올랐으나, 두차례다 면직되는 불운을 겪었다.
좌천된 부친을 찾아가다 27세 젊은 나이로 물에 빠져 사망한다. 

 

 

 

 

등왕각은 중국 강서성 남창시 공강에 있는 누각이다. 당 고조의 아들인 등왕 이원영이 653년 지었다. 
시는 왕발이 등왕각에서 열인 연회에 참석해지었다. 

시는 긴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왕발은 몇 개의 시어로 무심한 하늘의 도(道)와 유한한 인간사를 짚었다. 
특히 日悠悠와 几度秋는 정말 기막힌 대구다. 
日悠悠, 하루 해는 한가롭기만 하다는 뜻이다. 구름 흐르듯 천천히 간다는 의미다.
별자리도 그렇게 유유히 변한다. 사물도 별자리를 따라 그렇게 변한다. 

절벽 위의 소나무도 그렇게 늙어갔다.
벼랑 끝에서 꼬부라지고 비틀어져도 그렇게 살아 매년 푸르다. 산과 그 앞의 강물과 함께 별을 따랐기 때문이다.
세월을 견뎠기 때문이다. 한번의 꼬부라짐과 비틀어짐은 그 세월을 견딘 상처다.
사람은 그 앞에, 그 의연한 생명력 앞에 경건해진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은 소나무보다 못하고 소나무는 산보다 못하다. 산은 저 구름보다, 저 하늘의 별과 해보다 못하다.
무지 불식간에 절로 묻는다. 

 

 

​“青山依旧在, 几度夕阳红?”  

 

저 청산은 의구한데, 몇 번의 석양을 겪었을까? 

 

 

 

시를 읽으며 그나마 선인들은 현재 우리보다 나았다 싶다. 
그래도 저 산과 강을 보고, 구름과 별을 봤기 때문이다. 선인들을 그렇게 백년을 천년을 보고 살았다.
해의 변화가 하루고, 달의 변화가 월이다. 별의 변화가 계절이고, 한 해다. 그렇게 쌓인 봄과 가을을 춘추(春秋)라 한다. 바로 역사다. 역(歷)은 겪었다는 의미다. 그 세월을 지냈다는 뜻이다. 
요즘은 어떤가? 스마트폰에는 위성을 통해 정확한 시간을 본다. 
그러나 
 별자리는 보지 않는다. 세월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소나무를 닮으려 하지 않고, 저 산과 강을 닮으려 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시간의 증명을 받고 나서 생기는 게 의연함이다. 
무심한 하늘 한 조각구름과 별자리를 쫓아 산은 봄의 신선함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풍요와 겨울의 황량함을 겪고 나서 의연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오래 꾸준한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이 시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명구가 있다.

 

 

​“落霞与孤鹜齐飞, 秋水共长天一色。”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함께 날아가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일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