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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중국 통큰 재난보조 인당 2천위안 불가, 인구대국 중국지도자의 고심속 국가관리.

"인구대국과 역사대국의 위기관리의 궤와 격은 다른나라가 상상할 수 없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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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예년에 비해 두 달이나 늦게 열리고 기간을 단축해 폐회한 2020년 양회에서, 중국인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정치협상회의의 위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주쩡푸 (朱征夫) , 올해 57세인 그는 광동성 광저우시의 대형로펌 인 동방쿤룬법률사무소의 주주이며, 전중국변호사협회 부회장이다.

 

그는 지난달 정협회의에서, “국가가 모든 인민에게 전염병을 극복한 노고를 치하하고, 어려워진 생활을 보조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국도 탈피하는 방안으로, 14억 인구 모두에게 1인당 2,000 위안씩의 재난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안건을 상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중국인민들이 이를 반겼고, 인터넷에서 일거에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중국 돈 2,000 위안은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한화로 약 35만원 내외가 되지만, 중국물가가 한국에 비해 약 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백 만원 가량으로, 인민 1인 당 보조금으로서는 매우 많고 후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인구가 14억명이 넘는 관계로 이 보조금 총액은 무려 2조 8천억위안, 한화로 환산하면 약 450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자, 정협내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금액은 , 중국 인민해방군등 2019년 총 국방비의의 2, 5배에 달하는 거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2019 년 중국 총 회계 수입의 약 15 %에 상당하는 엄청난 재원 규모였던 것이다.

 

결국 주쩡푸 정협위원의 제안은 많은 인민들에게 일시적을 기대를 갖게 했다가 실망하게 만든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후 중국지도부는 숙고끝에 이번 양회에서, 각 성과 각시로 하여금 현지의 경제특성에 맞는 업종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성시별 소비쿠폰들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국고예산의 주름과 부담을 덜고, 또 각 지방의 산업과 주민소득의 고저등 현지 특성에 맞는 소비쿠폰을 발행함으로서 , 지역경제의 회생과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1석 2조의 정책을 실시했다 한다.

 

워낙 국토가 남북으로 동서로 넓은데다, 동부와 남부에 비해 북부와 서부지역의 소득의 격차도 적지 않은 복잡다단한 상황들이 혼재돼 있는 중국으로서는, 우리 같이 비교적  편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률적인 정책이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한국도 중앙정부의 재난 보조금과 서울 경기등 재정형편이 나는 지자체의 보조금까지 합하면 일인당 약 70만원 내외의 재난보조금을 뿌린 것을 보면, 코로나 19로 인한 재난보조금액은 한국국민들이 중국인민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은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의 엄청나게 많은 전국의 인구는, 평상시에는 다들 생산과 소비주체로서 국가경제발전에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위기처럼 전방위적인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를 맞게 되면, 그 많은 인구의 생계나 생활을 보조하는 것조차 여간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먼저 발전하고 있는 지역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소득차이나 물가수준의 차이등 상황의 다양성이 매우많아, 일률적인 정책으로 쉽게 해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계층의 인민들의 국가지도자로서 시진핑주석이 갖는 부담과 노심초사는, 아마 여타국가의 지도자들의 그것과, 그 궤(轨)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수많은 백성들은 1800년대 초반 아편전쟁무렵부터 1949년 신중국 건국 즈음까지 , 전국의 모든 지역에 걸쳐, 서방과 일본의 침략과 전쟁 그리고 국공 내전등 끊이지 않는 전쟁속에서 100년 이상을 살아 왔다.

 

또 신중국 건국이후에는 대약진운동의 실책에 연이어 엄습한 3년의 대기근으로 인해, 중일전쟁과 국공내전때에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은 인민들이 아사 ( 饿死)했다는 뼈아픈 역사도 겪었다.

 

중국과 중국인민은, 지구상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굴곡이 많은 근대사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대포를 앞세운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군대에 베이징의 궁궐들이 불에 탔고, 상하이는 서방국가의 식민지조계에 의해 약 100년동안이나 점령되었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게 일찌감치 빼앗겼던 홍콩은, 약 156년 동안 아예 중국이 아니었다.

 

99년 전에 영국과 중국이 맺은 홍콩의 할양조약은 1997년에 만료가 되기로 예정되었지만, 영국은 1982년부터 시작된 반환협상을 3년이나 끌었다.

 

무려 16차례나 협상을 했다. ' 기간을 연장하자, 영국군대는 계속주둔한다, 중국군대는 들어오지마라' 등등 갖가지 조건들이 제시됐다.

 

속내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돌려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지지부진했던  협상은, 베이징에서의 등소평과 영국수장 대처와의 담판을 통해, 무조건 반환으로 가닥이 잡힌다.

 

99년전의 할양조약대로 기간이 끝나면 돌려주면 될 것을, 무슨 담판까지 필요했는지 의문이지만 짐작은 간다.

 

결국 힘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이미 핵보유국이 된지 오래였고 영국은 미국에 의지했었을 것이다.

 

홍콩을 빼앗은 것은 영국의 대포였고, 홍콩을 되 돌려받은 것은 중국의 핵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지금은 영국과 미국등 서방이, 중국의 홍콩보안법을 비난하고 있다.

 

156년 동안 빼앗겼던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이제 23년 되었는데, 그 홍콩을 그렇게 오랫동안 식민지배했던 그 서방이 다시 감놔라 배놔라한다.

 

' 1국 양제를 50년 보장하기로 했다느니?  양제가 먼저고 1국이 나중이라느니? 1국을 해치는 양제는 인정될 수 없다? '  등등 각론에 티격태격하는 글들이 무성하다.

 

그런데 중국 근대사의 우여곡절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 보고 나면 답이 보인다. 아니 답이 이미 나와 있다.

 

 

2012년 말에 시진핑주석이 국가박물관에서 선언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中华民族伟大复兴)이란 워딩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두고, 서방에서는 시주석을 시황제에 빗대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시진핑의 중화민족의 부흥은 세계질서를 해칠 수 있다느니 하는 글들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부흥은 국어사전에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이란 뜻으로 돼 있고, 중국어사전에도 " 쇠락한 이후에 다시 일어나다.( 衰落后再兴盛起来 )" 라는 뜻으로 나와 있다.

 

식민지였던 홍콩을 비유로 부흥을 풀어보자면, ' 쇠퇴하였기에 빼앗겼던 홍콩을, 다시 일어나 원래대로 찾는다는 것'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부흥의 꿈은 시진핑주석의 개인적인 꿈혹은 야망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몽의 주체와 주인은, 중국과 14억 중국인민 일 것이다.

 

이렇게 선입견없이, 문자 그대로 보자면, 홍콩보안법등과 관련된 홍콩의 미래도 저절로 보이게 된다.

 

중국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의 가장 큰 주제는,  "노예가 되기 싫은 자들이여 일어나 전진하라! "이다.

 

'부흥' 이란 말하고 상통하는 노랫말인 것 같다.

 

1982년 초부터 홍콩반환협상이 시작됐지만, 홍콩을 예정대로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영국은, 당시 대처수상이 그해 9월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을 만나, ' 주권은 돌려줄 터이니, 통치권은 계속 영국이 갖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에 , 덩샤오핑은 ' 통치권없는 주권이 무슨 의미가 있나 ? ' 라고 응수했고,.

 

이 에 , 대처가 ' 중국이 홍콩을 통치하면 홍콩 번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경제얘기를 꺼내자,

 

덩샤오핑은 ' 홍콩의 번영과 중국의 주권 회복이 충돌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주권 회복을 택하겠다' 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지금부터 약 38년 전의 대화이다.

 

'주권회복과 중화민족의 부흥' , 홍콩을 보는 두개의 키워드인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