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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영국은 왜 홍콩반환 2년전에 입법회의선거를 허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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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홍콩보안법에 대한 관심이 요즘은, 오는 9월 6일에 치뤄질 홍콩 입법회의원 선거뉴스로 옮겨진 것같다.

 

대체라기보다는 2020년 홍콩의 봄과 중미관계를 뜨겁게 달궜던 홍콩보안법의 제정과 시행의 연장선상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9월의 입법회 선거에서 반중파가 다수를 점해, 홍콩보안법을 백지화시키기고 반중에 앞장서서 홍콩독립하라며, 격려하고 부추기고 보도자료를 내며 세계의 반중분위기를 고양시키는 형국이다.

 

영국등 서방이 홍콩을 격려하고 부추긴 것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궁금하다.

 

영국은 홍콩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동안에, 홍콩인의 대표들로 입법회를 구성해서, 홍콩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식민지홍콩을 지배했을까 ? 

 

아니다.

 

그렇다면 영국이 지금 지지한다는, 홍콩인들의 자치기구인 입법회의가 언제부터 생긴 기구인지 궁금해진다.

 

1995년이다. 

 

1995년이면 홍콩반환 1997년의 2년 전의 일이다.

 

토탈 157년이나 홍콩을 식민지배한 영국은, 식민지배 155년 째되던 해에, 즉 중국에 돌려주기 2년전에야 홍콩에 입법회의를 구성하라고 허용했다.

 

2년 있으면 원주인인 중국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그럴려면 70년대나 80년대 일찍 민주주의 사도답계 홍콩주민들의 자치권을 부여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중국은 홍콩반환협정에 명기된 일국양제에 의해, 대륙과 달리 홍콩주민에게는 일정부분 자치권을 부여하는 참정권참여제도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영국이 선수를 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건 고추가루였다. 

 

이제 못 먹을 감을 마구 주물러 놓은 것이다. 중국과의 마찰과 혼란을 만들수 있는 씨앗을 심어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영국이 일방적으로 1995년 홍콩주민대표로 의회를 구성하라고 한 행위는, 중영 홍콩반환협정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동이었다. 

 

심지어 영국정치권 내부에서도 비열한 정치적 행위라는 성토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이 항의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1982년부터 시작된 홍콩반환을 위한 중영 양국간 협의가 시작된 후, 영국은 어떻게 해서든 안돌려주려고 갖은 타협안을 제시했었다.

 

기한을 연장하자... 97년에 돌려주더라도 남는 자국민들을 보호해야하니 영국경찰은 남게 해달라... 홍콩의 주권은 중국에 돌려줄테니 인민해방군은 들어오지 마라... 등등 온갖 타협을 붙혀 2년을 끌다가 1984년에야 마지못해 도장을 찍었다.

 

할수 없이 홍콩을 포기해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19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여기서 영국정치인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중국이 다시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홍콩을 다시 식민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천안문사태는 등소평의 결심으로 평정됐지만, 영국은 중국에 제 2 제 3의 천안문사태가 또 곧 터질것이라고 믿기도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렇다면 홍콩인들에게 인심을 써서 그들의 마음을 잡아야 겠다고...

 

그래서 홍콩인들에게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자치 의회를 선물하자고 했는데,

 

당시 외교관출신인 윌슨 홍콩 총독이 내켜하지 않았다. 

 

윌슨은, "홍콩역사는 이제 영국의 손을 떠났다. 곧 중국의 영토가 될것이고, 중국이 자기체제에 맞는 자치권제도를 연구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여태껏 시행하지 않던 영국식 의회제도를 심어 놓으면 중국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고, 반환협정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고 반대한 것이다.

 

홍콩총독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자 1992년 영국의 보수당의 국수주의적인 메이저 내각이 들어서면서 외교관출신 윌슨총독을 경질하고, 얘기가 통하는 정치인인 크리스 패튼으로 바꿨고 미션을 부여했다.

  

패튼총독은 처음 2년 역시 독단적으로 홍콩을 지배하다가 홍콩반환 3년을 남겨놓고 홍콩인에게 의회를 구성하는 투료를 실시하게 했고 이것이 홍콩의회의 시작이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당시 영국총독 패튼이 홍콩에게 민주화를 가져 온 것으로 돼있다. 1997년 6월 30일 총독관저를 떠나 홍콩반환시기장으로 가는 길에 많은 박수도 받았다고 한다.

 

홍콩보안법, 입법회의등등을 둘러싼 홍콩의 혼란을 보면서 궁금한것을 정리하자면,

 

하나는, 홍콩시민들은 과연 당시 패튼총독이 갑작스럽게 입법회의를 허용한 배경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리고 또 하나,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지 않아도 됐다며느 과연 1995년에 영국이 홍콩에 입법회의를 허용했을 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