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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⑤ 첫 전투승리주역 덩웨, 12살에 입대한 소년홍군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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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제 5편. 첫 전투승리주역 덩웨, 12살에 입대한 소년홍군 출신

 

 

최초의 교전을 승리로 이끈 118사단장 덩웨는 홍소귀(紅小鬼) 출신이다. 후베이(湖北省)성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2세때 홍군에 참가했다. 사병으로 출발해 16세때 중대장이 됐다.

 

1918년생인 덩웨는 1930년 12살의 나이때 부터, 1931년에 마오쩌동이 지앙시성 뤠진에 수립한 중화소비에트 임시공화국의 설립 전후의 각종 전투에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한 차례 전투의 패배로 문책당해 군법에 회부되어 총살 직전까지 갔었다. 마침 형장을 지나던 홍군 고위간부 잔차이팡(詹才芳)의 눈에 띄어 살아났다. 잔차이팡이 그의 상황을 파악한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 그를 구출해준 것이었다. 이후 그는 잔차이팡의 경호병으로 복무했다.

 

이후 그는, 홍군이 장제스의 국민당군의 총공세를 피해 서북쪽으로 피신을 시작했던 했던 1934년 16살의 나이에 경호대를 이끄는 중대장이 되었다.

 

대장정 도중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의 병세가 심해지자 부대는 은화 열 닢을 마련해 근처 농가에서 요양하도록 결정했다.

 

고집이 센 그는 거부했다. 이를 악물고 행군을 계속하다가 실신해 길가에 누워버리게 됐다. 후에 인민해방군 대장(大將)이 된 천겅이 말을 타고가다 그를 발견했다. 천겅은 자신의 말을 같이 타고 가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도 거부했다. 천겅이 자꾸 재촉하자 말꼬리를 잡고 걸어 가겠다고 버텼다. 결국 말꼬리를 잡으며 행군을 계속했고 마침내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마오쩌동의 홍군이 1934년 10월부터 대장정을 시작해 1만 2천5백킬로미터를 전투를 거듭하며, 1935년 10월 서북부 샨시성 옌안에 새 둥지를 틀 때 희생은 엄청났다.

 

처음  8만명으로 시작했던 제 1방면군은 옌안에 도착할 때 1만명의 병력으로 줄어 있었다. 대장정 도중 합류했던 새 병력의 보충 상황까지를 고려하면, 생존률이 10% 도 채 되지 않은 죽음의 대장정이었다고 전해진다.

 

덩웨는 이 생존자 대열로 살아남아, 이후 제 2차 국공합작하에서 일본의 중국침략군과의 전투를 수행했고,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뒤로는 1949년 신중국건국때 까지 동북전선에서 국민당군과의 전투일선에 지휘관으로서 투입되기도 했다.

 

덩웨이는 그리고 다음해인 1950년 겨울에, 항미원조전쟁의 선발 지휘관의 한 사람으로서, 1~5차 전투에 모두 참가했다.

 

항미원조전쟁기간동안 세운 전공으로 118사단장에서 제40군 부군단장 겸 참모장으로 진급했다.

 

 

1953년 종전이후, 1955년 중국군에 계급 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소장(少將 , 원 스타) 계급을 부여받았다.

 

이후 제38군 군단장, 선양(瀋陽)군구 부사령관, 난징(南京)군구 부사령관을 지내다 은퇴했고, 2000년 4월 선양(瀋陽)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