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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⑪ 2차 전역(남하)의 시작, 목표는 평양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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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펑더화이는 마오저동에게 10월 25일 첫 전투개시 이후의 상황에 관한 보고와 이후 작전을 상의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인민지원군 지휘관들을 상대로 당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

 

1차 전역을 평가하면서 앞으로 치를 2차 전역을 위해 구상한 전력배치를 명령하기 위해서였다..

 

펑더화이는 1차 전역의 성과등을 설명한 후 갑자기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 38군 량싱추(梁興初)는 왔는가? "

 

" 예 "라는 대답과 함께 38군 군장 량싱추가 벌떡 일어섰다.

 

펑더화이는 "내가 자네에게 희천 쪽으로 뚫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건가? 39군은 운산에서 잘 싸웠고 40군도 좋은 성과를 올렸는데, 자네의 38군은 왜 질질 끌다가 작전을 망쳐놓았나?  희천에는 적 1개 대대만 있었을 뿐이라고 하던데, 왜 그런 거였나? "라며 따져 물었다.

 

"사실은… 그게…."  량싱추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평더화이는 주먹으로 책상을 꽝 내리쳤다.

 

펑더화이의 추궁은 계속됐다.

 

"희천에 흑인(黑人)연대가 있었다고? 사람들이 너를 호랑이 장군(虎將)이라 부르던데, 무슨 놈의 호랑이 장군이냐, 너는 쥐새끼 장군(鼠將)이야 !."

 

이런 말도 내뱉었다. "나, 평더화이는 재주는 별로 없지만 읍참마속(泣斬馬謖 : 눈물을 머금고 마속 장수의 목을 치다, 즉 군령을 세우기 위해 아끼는 부하장수의 목을 친 고사에서 나온 성어 ) 하는 재주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목이 날아가도 시원찮을 놈이야 !."

 

사실 량싱추는 그동안 국민당군과의 2차내전에서 연전년승으로 소문이 자자한 용장(勇將)이었다.

 

량싱추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공개석상에서 읍참마속을 당할만 하다는 상사의 질책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다.

 

펑더화이 총 사령관의 앞으로의 2차 전역에 관한 작전지시회의가 끝나자 량싱추는 머리를 푹 숙이며 밖으로 나왔다.

 

극심한 굴욕감과 자괴감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량싱추가 이렇게 욕을 먹은 이유는, ’흑인 연대 소동’ 때문이었다.

 

펑더화이는, 1차 전역 초기 온정과 운산에 병력을 집중시키면서, 량싱추의 38군에게 신속하게 희천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황급히 희천으로 이동하던 그의 부대는 좁은 길에서 심각한 체증을 겪었다. 후퇴하던 북한 인민군 대열과 북한 정부기관의 차량 등과 뒤엉키고 말은 것이다.

 

이로 인해 38군은 예하 각 사단과의 연락이 끊어지게 됐다.

 

게다가 군 사령부의 차량 한 대가 전복되면서 작전단장을 비롯한 사령부 고위 인원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건까지 발생했다. 분명히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희천방면에 관한 첩보가 들어왔다, 38군에게 진격명력이 떨어진 희천에 1개의 흑인 연대가 나타났다는 보고였다.

 

 

량싱추는 당시 희천에는 한국군 1개 대대만 있다는 정보를 보고 받았는데, 대대병력의 3배나 되는 연대 병력이 있는데 그것도 흑인병력으로만 구성된 1개 연대병력이 있다는 첩보였다.

 

알고 있던 상황과 큰 차이가 있는 내용이었다.

 

량싱추는 당황했다. 참전하기 전 미군에 관한 정보보고를 학습할 때 , 흑인병력의 전력은 백인전력보다 막강하다는 얘기가 있어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첫번째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다음날 저녁 때가 되서야 뒤늦게 희천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희천에 진입하고 나서야 뒤늦게 확인된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흑인부대라는 건 없었고, 한국군 8사단도 이미 몇시간 전에 이동을 해버린 상태였다.

 

결국 랑싱추의 잘못된 첩보오 인한 오판으로 희천에 대한 공격과 점령이 늦어져 버린 것이다.

 

10월 25일부터 시작된 1차 전역에서 가장 먼저 희천를 점령하겠다는 펑더화이사령관의 작전이 초기에 일부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고, 이에 2차 전역의 시작을 앞두고 1차전역에서 유일하게 실책을 저지른 량싱추를 호되게 질책한 것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펑더화이는 다음과 같이 부대 배치를 결정하고 작전을 지시했다.

 

38군·39군·40군은 덕천 영변으로 이동한다. 적군 뒤로 우회해 퇴로를 차단한 후 적군을 포위한다.

 

38군 예하 112사단은 희천에서 치고 빠지면서 적을 유인한다.

 

42군은 영변으로 이동하고 66군은 구성에 집결해 대기한다. 50군은 해안을 경비한다.

 

펑더화이는 2차 전역을 앞둔 작전회의장에서 량싱추에게 일침을 가한뒤, 또 다시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역전의 용사였던 량싱추에게 다시 한번 과감한 작전을 지시한다.

 

즉 적진을 침투·관통해 미 8군보다 더 빨리 남하해서 퇴로를 끊고 포위섬멸하라는 임무였다.

 

상당히 쉽지않은 작전이었지만, 평더화이는 량싱추가 능히 해낼 것이라고 판단해 다시 한번 중책을 맡긴 것이다.

 

 량싱추에 대한 펑더화이의 믿음과 판단은 2차 전역( 남하) 에서의 승리로 맞았음이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