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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건국공신

中 항미원조전쟁 70주년기획 ⑫ 2차전역의 기습전 파죽지세는 영화로도 만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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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지원군의 제 2차 전역의 목표는 대동강을 남하하면서, 대동강 북쪽으로 북진했다 퇴각하는 한국군과 미군등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퇴로를 차단하려면 , 정상적인 길을 우회해 더 먼 길을 더 빨리 진격해야 하는 기습을 전개해야 한다.

 

제 2차 전역의 문을 연 이 기습작전들이 큰 성공을 거둔다.

 

항미원조전쟁 동안에 성공했던 인민지원군의 이 기습전등 성공스토리들은, 종전이후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인민해방군의 사기를 높히기 위해 아주 많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1960년 중국인민들에게 상영돼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기습 ( 奇袭 )이, 바로 이 2차 전역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던 기습전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2차전역은 인민지원군 제 38군이 청천강 이남의 북한 중부인 덕천( 德川 )의 점령과 함께 전개된 기습전으로 부터 시작된다.

 

38군 군장 량싱추(梁興初) 는 습기 찬 동굴 속에서 지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도 봐서 지도상의 모든 북한 지명을 달달 욀 정도였다.

 

이 때 인민지원군 본부의 제 2 부사령관 한센추(韓先楚)가 동굴로 찾아와 상세 명령을 하달했다.

 

즉 38군과 42군이 협력해 덕천을 점령한 뒤, 이어 영원을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인민지원군 38군 군장인 량싱추 (梁興初)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했다.

 

전회인 11회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량싱추는 , 펑더화이 총사령관 주재하에 지난 1차 전역의 승리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 소위 ' 흑인연대 출현 ' 해프닝때문에 부여받았던 임무를 다 완성하지 못해, 다른 군장급 동료와 선후배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큰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놓이지 않은 펑더화이 사령관은 량싱추가 또 공격을 주저하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까봐, 부 사령관 한센추을 통해 42군의 지원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라고 했기 때문에, 나름 흥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량싱추는 자신의 38군 단독으로 덕천을 맡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한셴추는 펑더화이(彭德懷)에게 전화를 걸어 38군이 단독으로 덕천을 점령하겠다는 량싱추 군장의 뜻을 전달했다.

 

보고를 들은 펑더화이의 눈은, 순간 벽에 걸린 군사지도를 훑었다.

 

만약 38군이 단독으로 덕천을 쳐서 이길 수 있다면,  42군으로 하여금 동시에 영원을 공격하게 해 2처 전역의 남하속도를 빨리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심끝에 평더화이는 작전 변경을 승인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덕천 부근의 대동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교량을 기습적으로 폭파시켜 한군국과 미군의 퇴로를 막아 섬멸하기 위해 특공대를 파견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이 교량폭파를 위한 기습전의 비화는 종전후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제목도  "기습" 이었다.

 

 

영화 ’기습’은 1960년 첫 상영된 1시간 16분 분량의 흑백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인민지원군 모 부대 중대장 팡융(方勇)은 정찰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게됐다.

 

그가 지휘하는 정찰대는 지뢰밭을 통과하고, 한국군을 따돌리고, 간간이 교전을 벌이고, 연락책인 북한 할머니 ’오마니’를 구출하면서 마침내 다리 앞까지 이른다.

 

 

 

그런데 당시 그 교량은 이미 한국군이 장악해 엄밀히 봉쇄한 상황이었다고 전해지고, 함께 작전했던 북한 여성 빨치산 박금옥의 도움으로 폭약을 다리에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다리가 폭파되면서 임무는 완수된다.

 

이 영화는 개봉했던 60년 당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관람했다.

 

이후 영화 상영이 대부분 금지됐던 문화대혁명 시기 때에도 지속적으로 반복 상영됐던 국산 영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팡융의 실제 모델은 제38군의 정찰과장 장쿠이인으로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