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포함한 전국 260개 도시에서 통합 교통카드가 시행된다. 이에 따라 이들 도시에서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교통카드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중국뉴스웹사이트(中国新闻网)에 따르면 올해 전국 260개 지급(地級) 이상 도시에서 도시교통카드 통행 시행할 예정이다. 승객들은 카드를 구매하면 베이징 포함한 260개 도시에서 지하철,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 통합 교통카드 시행을 두고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굳이 교통카드를 써야하지? 핸드폰이 더 편리한데”라고 비판을 했지만 다른 네티즌은 “이제 고향 내려갈 때 잔돈 찾지 않아도 되겠다”며 환영했다.
덩샤오핑의 이 편지는 당장 마오쩌둥에게 전달되지는 못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연금 상태였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편지는 각종 심의를 거쳐 1972년 8월 4일에야 비로소 마오쩌둥 손에 쥐어지게 된다. 편지를 읽은 마오쩌둥은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과거 소련에 의해 내가 숙청 위기에 처했을 때 덩샤오핑은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줬다. 그가 역사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단 한 번도 적에게 투항한 적이 없다. 전공도 혁혁하다. 건국 이래 공도 있다. 이 이야기는 과거에도 많이 했지만, 내 다시 한번 언급한다. 연금 상태의 덩샤오핑에게는 사실상 면제 부가 주어진 것이다. 옆에서 마오의 이 같은 언급을 들은 저우언라이周恩来는 바로 그 사실을 깨달었다. 사실 세상에 누가 있어 저우언라이보다 마오쩌둥의 한마디 한마디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저우언라이는 바로 사무국에 연락해 조치를 취한다. 당장 덩샤오핑의 편지와 마오 주석의 발언을 문서로 작성해 정치국 간부들에게 열람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 자신도 8월 15일 정치국 회의 석상에서 다시 한번 덩샤오핑의 편지와 이에 대한 마오쩌둥의 평가를 언급한다. 조금씩 덩샤오핑의 복권을 공식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덩샤오핑 복권의 여론 형성으로 사례 같은 책에는 저우언라이가 어떻게 덩샤오핑의 복권을 위해 당 내부 여론을 형성했는지 보여준다. 또 당 내부의 미약한 움직임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당 외부의 여론을 만들어 갔는지 보여준다. 이 사례는 마치 한나라 유방이 자신의 황위를 당초 결정했던 황태자가 아니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한나라 건국 대신들이 황태자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줘 유방의 마음을 변치 않게 했다는 중국 고사와 비슷하다. 이 사례를 알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천이다. 천이陈毅, 중국 공산당의 공간이다. 1901년 쓰촨四川 출신으로 1919년 프랑스에서 주경야독을 한 인재다. 1921년 프랑스 중국 유학생들의 애국운동에 참여했다. 추방돼 1922년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한 중국 공산당 초기 원로다. 1955년 원수 칭호를 받았고 군사위 부주석까지 지냈지만, ‘2월 역류’로 1969년 스자좡石家庄에 유배된다. 2월 역류는 중국 공산당 원로들의 문화대혁명 주세력인 린뱌오林彪를 강하게 비판한 사건을 말한다. 린뱌오는 소련과 관계가 악화되자, 이를 이용해 자신의 반대파를 전부 베이징北京에서 쫓아낸다. 그렇게 쫓겨난 천이는 1971년 1월
1966년 8월 1일 마오쩌둥毛泽东은 중국 공산당 8기 중앙정치국 11차 전체회의(이하 11중전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의 창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문화대혁명은 소위 무산계급의 독재를 위해 반대파를 제거하는 정치적 운동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마오쩌둥이 발동을 건 문화대혁명의 창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저우언라이周恩来도 점차 문화대혁명 시대 '방패'의 역할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문화대혁명의 창과 방패, 바로 중국 공산당 당사가 규정한 소위 문화대혁명 사인방과 저우언라이의 관계다. 1966년 8월 1일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11중전회 회의는 처음부터 잔뜩 긴장된 모습이었다. 초반부터 마오쩌둥은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지금 당 중앙이 대학 혁명 현장에 공작조를 파견해 어느 것 하나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공작조 90% 이상이 나쁜 짓만 한다. 군중을 억제하고, 제어하려고만 한다. 이어 마오쩌둥은 회의 첫날 바로 칭화清华대학 부속 중학 홍위병에게 편지를 쓴다. 이 어린 학생들은 당 중앙이 파견한 공작조 활동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마오는 편지에서 "어린 학생들의 혁명 정신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당 중앙만 몰랐던 문화대혁명의 여론 형성 과정 이 사건은 당대 무소불위의 마오쩌둥이라도 당내 여론이 형성되지 않으면 쉽게 전횡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오쩌둥은 아내 장칭 등을 이용해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당중앙을 우회해 상하이 문회보에서 작은 사건을 일으키고 그 것으로 중앙을 공격하도록 한다. 나중에 마오쩌둥 본인이 중앙 공격의 선봉장이 된다. 1965년 11월 중국 전역을 10여 년 휩쓴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의 불씨가 타오른다. 불길은 중난하이가 아니라 저 멀리 상하이에서 시작됐다. 상하이上海에서의 이 같은 움직임을 류샤오치刘少奇나 저우언라이周恩来 등 당대 중난하이中南海 지도자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중난하이와 먼 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정신없이 바빴다.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 나라살림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류샤오치, 저우언라이, 천이 등 당대 중국 지도자들은 모든 역량을 경제 회복에 집중했다. 자연히 나라살림을 책임진 총리 저우언라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바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뭄 등 자연재해가 지속돼 저우언라이를 괴롭혔다. 전국 주요 피해지역의 가뭄대책 현황을 점
중국에서 여론이란 무엇인가? 여론 정치란 무엇인가? 중국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서구 형태의 여론 제도가 없어 마치 여론이란 게 없지 않냐는 오해를 불러 온다. 어차피 공산당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게 중국의 여론 매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맞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당내 여론, 또 그 당내 여론을 주도해 군중 여론을 이끄는 자체가 하나의 여론정치의 과정이다.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국이다.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다. 소위 당 중앙이라 불리는 중앙위원회 위원수만 204명(17기), 후보위원만 167명에 달한다. 지방조직만 31개 성이 있다. 중국 전체 공무원수는 716만7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을 하나처럼 움직이도록 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당내 여론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일당 독재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내 여론 통일은 필수적인 일이다. 공산당 당내 여론 공작이 그렇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다음이 8000만 이상의 공산당원의 수배인 15억 국민이다. 당내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데 15억 인구의 여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미국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중국은 중국도 존중받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다. 과연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주제를 놓고 미국을 가장 잘 아는 중국인으로 꼽히는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와 중국은 가장 잘 아는 미국인으로 꼽히는 윌리엄 코헨 전 미 국무부 장관이 대화를 했다. 미중 수교 40주년을 맞아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과 국제문제 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다. 14일 자유아시아 방송은 세미나에서 추이톈카이와 코헨의 대화를 잘 정리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추이톈카이와 코헨은 미중 간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양국 간에 신뢰 부족의 책임을 서로 떠미는 모습을 보였다. 코헨은 과거 40년 동안 유지된 미국 중심의 세계가 그대로 유지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추이톈카이는 중국은 중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발전하고, 그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보도에 따르면 추이톈카이나 코헨은 모두 미중의 공통 이익이 양국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시켰다는 의견을 같이 했다. 추이톈카이 "이러한 공통 이익은 계속 늘었다"라며 "특히 무역 관계와 세계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에서 그렇다."라고
중국의 남성 위주 구인 실태가 외신들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처음 그러가보다 했는데, 뉴욕타임스 기획을 보니 정말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먼저 알리바바의 구인광고입니다. 이게 무슨 구인 광고인가 싶습니다. 예쁜 여성들이 나와서 남편감의 조건을 말합니다. 난 멋진 남성이 좋아.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IT 업계 근무자야.즉 이 예쁜 여성들을 만나고 싶으면 알리바바로 오라는 것이죠. 다음 동영상은 더 황당합니다. 일자리 구하는 것은 여성을 찾는 것과 같다. "네가 관계를 맺고 싶은 곳과 관계를 맺어라." 입사를 한 뒤는 더더욱 황당합니다. 아래 동영상은 19세 미만 관람 금지입니다. 어디 술집이 아닙니다. 지난해 중국 한 IT 회사의 연말 파티 모습이라고 합니다. 남성 직원 사이에 낀 물병을 여성이 입을 이용해 여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를 연상시키고, 여성을 이용해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게 분명합니다. 뉴욕타임스는 기획기사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중국 사회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17년 5월 이후 중국 다수 언론 보도에서 중국의'新 4대 발명(新四大发明)'이라는 단어가 끊이지 않고있다.고속철도, 모바일 결제, 전자상거래, 공용자전거를 포함한 말이다.최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중국 모바일 업계 최강자라 할 수 있는 텐센트(腾讯) 회장 마화텅이 이를 다시 언급함에 따라이에 대해 BBC가 분석 기사를 보도해 화제가 되었다. Rumor : 고속철도, 모바일 결제, 전자상거래, 공용자전거를 중국에서 발명했다. Fact :중국은 그 어떤 것도 발명하지 않았다. 다만보급, 상용화되는데 앞장선 것 뿐. 新 4대 '발명'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가?'新 4대 발명(新四大发明)'이라는 말은 베이징외국어대학이 2017년 5월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이 조사는 20개 국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으로, "중국에서 자국으로 귀국할 때 가장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케 했다. 설문대상자의 응답 중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것이 바로 고속철도(高铁), 모바일 결제(支付宝), 전자 상거래(电子商务), 공용자전거(共享单车) 였다. 왜 '新 4대 발명(新四大发明)'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언급되는가?우선 '4대 발명'이라는
북한과 중국이 비공식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중화권 매체들과 각국 주요 매체들이 주판알을 튕겼습니다. 누가 더 이득일까요?뉴욕타임스; 김정은 묘수를 두다.이번 북중 회담을 통해 중국과 북한은 단번에 잠시의 갈등을 뛰어넘어 전통적 동맹 관계를 새롭게 확인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했다. 신화사의 보도를 보면 김정은은 "북중관계는 선대가 직접 건설한 우호관계로 그것이 흔들리는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 회담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가 완화될지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 상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북한을 압박하는 데 중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 한번 중국의 위치를 생각하게 됐다. 트럼프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중국의 역할 없는 그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이번 회담으로 중국은 전 세계에 "누구든 북한과 특히 핵문제에서 어떤 협의에 도달하려면 중국을 벗어나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선임 연구원은 "북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