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所以能长且久者,以其不自生,故能长生” “tiān dì suǒ yǐ néng zhǎng qiě jiǔ zhě ,yǐ qí bú zì shēng ,gù néng zhǎng shēng ” 老子 “하늘과 땅이 오래된 것은 남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고로 오래 사는 것이다.” 하늘은 구름을 품지만 다시 땅으로 내려 보내고 땅은 물을 품지만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낸다. 하늘과 땅은 이렇게 호응해 이로움이 천하에 고르게 돌도록 한다. 땅의 생물들은 그래서 한 생을 살수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필요하게 되면 자연히 오래가는 법이다.
“有无相生,难易相成, 长短相形,高下相盈。音声相和,前后相随,恒业” “yǒu wú xiàng shēng ,nán yì xiàng chéng , zhǎng duǎn xiàng xíng ,gāo xià xiàng yíng 。yīn shēng xiàng hé ,qián hòu xiàng suí ,héng yè ” 老子 “생명은 유와 무로 이뤄져 있고, 모든 일은 어려움과 쉬움으로 짜여 있다. 짧고 긴 게 같이 있어 모양을 만들고 높고 낮음이 서로를 하나로 채운다. 음과 성이 같이 있어 노래가 되고, 앞뒤가 서로 잇따라 영원한 것이다.” 노자 사상의 정수다. 모순은 세상을 만들고 영원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모순은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유가 유임을 내세워 무를 배척하고, 높음이 높다고는 것을 내세워 낮음을 배척하면 세상의 조화는 깨지고 영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스스로를 정의라 하는 세력이 나오면 항상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를 노자는 잘 보여준다.
“身无以用人,而又不为人用者卑” “shēn wú yǐ yòng rén ,ér yòu bú wéi rén yòng zhě bēi ” 晏子 “자신을 위해 사람을 쓰지 않고, 남을 위해 쓰이지도 않는 이는 비천하다.” 사람은 혼자서는 어떤 일을 하기 힘들다. 개인들에게 공평이 주어진 시간이 딱 24시간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얻는 방법으로 개인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낸다. 나라의 위기가 그렇다. 국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하지만 반대의 경우 아무리 작은 위기도 나라를 위태하게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 게 바로 남을 쓰지도, 남을 위해 쓰이지도 않는 이를 비천하다 했다 싶다
“君正臣从谓之顺,君僻臣从谓之逆” “jun1 zhèng chén cóng wèi zhī shùn ,jun1 pì chén cóng wèi zhī nì ” 晏子春秋 内篇谏下 “임금이 바른데 신하가 따르는 것을 순종이라 하고 임금이 틀렸는데 따르는 것을 역종이라고 한다.” 안자는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 나라의 정치가로 이름[諱]는 영(嬰), 자(字)는 중(仲)이다. 관중과 함께 양대 재상으로 꼽힌다. 글은 그가 남긴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다. 임금이 옳으면 따르지만 그릇되면 따르는 게 오히려 역적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그 옛날 하늘 아래 두려울 것이 없는 임금도 그리 섬겼는데,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요즘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민심을 어겨 쫓겨난 전직 대통령의 사례가 있다.
“海不辞水,故能成其大; 山不辞土石,故能成其高” “hǎi bú cí shuǐ ,gù néng chéng qí dà ; shān bú cí tǔ shí ,gù néng chéng qí gāo ” 管子 形式解 “바다는 온갖 물을 마다하지 않아 넓게 됐고, 산은 온갖 흙과 돌을 마다하지 않아 높게 됐다” 바다가 물을 가렸다면 정말 바다가 됐을까? 산이 흙과 돌을 가렸다면 정말 산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람만이 물을 가려 맑다 하고, 흐리다 한다. 산의 토양을 가려 기름지다 하고, 척박하다 한다. 바다는 구분하되 가리지 않는다. 맑은 물을 맑은 물 그대로 흐린 물은 흐린 물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흐린 물을 맑게 하려하지 않고 맑은 물을 흐리게 하지도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다. 기름지건 척박하건 받아들인다. 그래 그 속에 나무들이 알아서 자라도록 한다. 기름진 곳은 기름진 그대로 척박한 곳은 척박한 그래도 산 속 식물들이 자라고 스스로 커간다. 그래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어 넓고 높게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여론이 완전히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서로를 배척하고 있다. 넓고 높은 나라가 되는 데 치명적인 행동들인 데 참 아쉽기만 하다.
“用赏者贵诚,用刑者贵必” “yòng shǎng zhě guì chéng ,yòng xíng zhě guì bì ” 管子 九守 “상을 주는 이는 성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벌을 주는 자는 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상과 벌은 모두가 조직의 규율을 세우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만 그 둘을 제대로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관자는 아주 간단한 법칙을 알려준다. 쉽게 풀어보면, “상은 믿음이 중요하고, 벌은 ‘반드시’라는 규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은 말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지키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신의요, 명예다. 반면 벌은 특정사항을 어기면 반드시 정해진 규칙대로 정해진 벌을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쉬운 것 같지만, 사회 각종 규범과 이를 지원하는 각종 기술이 발달한 요즘 사회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말이 많다. 최근 법원의 영장 발부가 관자가 이야기하는 ‘필’이 없어, “도대체 언제 발부하고 언제 발부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문이 많이 제기돼 쌓이면 그게 불신이다. 사법부 불신을 별개 아니다. 벌이 법이 정한 그대로 집행이 안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寡交而多亲,谓之知人” “guǎ jiāo ér duō qīn ,wèi zhī zhī rén ” 管子 戒策 “두루 사귀지 않아도 친구가 많으면, 그 것을 사람을 안다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두루 사귀지 않고 두루 친구가 많을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한가지 방법이 있다. 오래 사귄 친구 하나가 나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럼 다른 친구들은 깊게 사귀지 않아도 그 친구를 통해 나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관자의 ‘사람을 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개개인이 다른 수많은 사람을 다 아는 게 아니라 나에 비춰 친구가 될 이를 빠르게 판단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두루 사귀지 않아도 두루 친구”가 많을 수 있다.
“多言而不当,不如其寡也” “duō yán ér bú dāng ,bú rú qí guǎ yě ” 管子 戒策 “말이 많지만 합당한 게 없으면 말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말이라는 게 많을수록 제대로 된 말이 아니라는 의미다. 노자가 그랬던가. 말은 할수록 오해를 낳고, 오해를 풀려 할수록 오해는 깊어만 진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사실 말로 오해를 풀려는 자체가 수상스럽다. 본래 진실은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물증으로 확인해주면 되는 것이다. 최근 모씨가 그런 것은 다 제쳐 놓고 말로 풀어보려 한다. 듣다 보면 짜증스럽다. “고마해라. 이제 그만 많이 들었다.”, “不如其寡也!”
“巧目利手,不如拙规矩之正方圆” “qiǎo mù lì shǒu ,bú rú zhuō guī jǔ zhī zhèng fāng yuán ” 管子 法法 “아무리 눈 재주와 손 재주가 좋아도 조악한 컴퍼스보다 원을 못 그린다.” 이 문장에서 컴퍼스는 법규를 의미한다.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정확하고 사리에 분명하다고 해도 법을 정해 놓지 않으면 일에 결함이 생기는 법이다. 법과 원칙에 의해 모든 일을 처리하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마음대로 그린 원보다 정확한 법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다.” 요즘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不失其时,然后富“ “bú shī qí shí ,rán hòu fù ” 管子 禁藏 “때를 놓치지 않아야 부를 이룬다.” 모든 일의 답은 시간이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화력에 맞춰 적당한 시간 익힐 줄 아는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 이런 점에서 요즘 우리 경제가 걱정이다. 경기하락기가 분명한데 정작 쓰는 정책은 상승기에나 어울리는 억제책이다. 심지어는 억제책에 부양책을 섞어서 쓴다. 한번 간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때를 놓치지 않아야 부를 이루는 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