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중국의 수도인 천안문광장에서 ‘한류(韩流)’가 최고니까 중국은 ‘한류’를 배워야 한다고 외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중국인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거나 경찰에 끌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천안문광장은 아니지만 실제로 중국 문화사업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중국은 ‘중화사상’에 바탕을 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때문에 역사와 문화와 관련한 사건이 대두되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중국인은 체면을 중시한다. ‘‘중국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체면의 나라’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때문에 선물을 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고받지 않고 아무리 상사라고 해도 다른 부하직원들 앞에서 잘못한 직원을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체면은 단순히 쪽 팔림이 아니라 위신과 존엄을 무시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중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중국인의 체면을 살려주는 ‘겸손'을 꼽는다. 중국사업에서 겸손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고 남의 의견을 소중하게 들을 줄 아는 겸손은 중국사업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세다.
필자는 한국 방송관계자와 중국 방송국 관계자 몇 명과 술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몇 잔의 술이 오가고 조금씩 서로간에 익숙해지자 자연스럽게 중국 드라마 등 프로그램과 관련된 얘기들도 오고 갔다. 그런데 불쑥 한국 방송관계자 한 사람이 ‘중국 드라마는 너무 볼게 없어요 너무 못 만들어요 한국 감독들을 데려다 만들면 훨씬 더 잘 만들 텐데’라며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그런데 아뿔사! 이 얘기를 통역이 그대로 중국 PD들에게 전달해 버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더니 중국 방송국 관계자가 통역을 통해 ‘한국 드라마는 정말 뛰어나다. 중국 PD들은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 하지만 중국 감독들도 한국처럼 투자비가 많이 책정되고 소재 제한이 풀린다면 아마 향후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회답했다. 체면이 깎인 중국 방송국 관계자가 그나마 자리를 주선한 필자의 체면을 살려주려고 애써 겸손한 대답을 건넨 것이다.
겸손함은 일을 만든다. 중국에서 문화사업을 하려면 적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쉽게 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겸손함을 잃고 상대방의 체면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중국인은 체면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체면이 깎인 중국인은 충분히 체면을 깎은 사람의 적이 될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세계속에 한국 대중문화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대중문화의 거센 바람은 결코 어떤 한 개인이나 기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힘들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한국 대중문화의 힘 뒤에는 늘 희생하며 남의 것을 배우려는 겸손의 자세가 있었다.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 대중문화 관계자들 중에는 ‘한류’에 도취되어 한국의 대중문화 시스템이 최고이고 중국에서는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중국 대중문화 관계자들도 자신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고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코 중국문화시장 진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좀 더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로 중국 대중문화시장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대중문화가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다고 해도 중국에서는 다양한 해외문화 중 하나일 뿐이고 중국에서의 영향력 또한 크지 않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류’가 최고이며 마치 거대한 산을 집어 삼킬 듯한 파도와 같은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외치는 모습은 중국인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다.
세상에서 최고로 겁이 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을 때에 비로서 중국문화를 배울 수 있고 중국문화사업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겸손한 태도로 주위의 충고에 귀 기울이고 행동할 수 있을 때 중국문화시장의 문은 더욱 크게 활짝 열릴 것이다. 마음가짐만 있다면 돈 없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겸손의 무기를 결코 버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