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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世界文化遗产,东亚文化繁荣灿烂的文化遗产,百济遗址篇


       “就我而言,我感觉自己与朝鲜半岛有某种亲切感。据日本编年史记载,桓武天皇的母亲是古代朝鲜百济武宁王的家族中人。”2001年12月,这句话在日本引起了轩然大波。说这话的人是当时日本的天皇——明仁天皇。其实,日本与百济的密切关系,不用说学界,这是韩国和日本的普通人都知道的事实。但是,在日本皇室血统中,有百济的血统这件事,是一个非常敏感的事情。可是,承认此事的不是别人,正是日本皇室血统的直系天皇本人。百济又重新受到了韩国和日本的瞩目。

在公山城,曾布置了包括百济王宫在内各种设施。


       此后过了16年,2017年,百济仍然是一个隐藏在神秘中的古老国度。据悉,中国《东夷传》评价说,百济只不过是一个位于小小的朝鲜半岛某个角落的小小的氏族国家。另外,也有这样的评价,根据朝鲜初期《三国史记》和《续日本纪》所记,百济不仅对朝鲜半岛和日本列岛产生了深远影响,还是一个对山东有影响的大国。

弥勒寺址是东亚最大规模的寺域。

       未来可能会揭露出其真相,迄今为止,研究证明了《东夷传》的评价是过于刻薄的。由于到目前为止,发掘的遗址非常精密、多样,不能确定百济只统治了朝鲜半岛的小地区。

松山里古坟群是百济王室的陵墓群,以百济王陵或武宁王陵的名字被大众所知晓。


       国际社会也承认了古代东亚百济王朝,于2015年将其遗址列入世界文化遗产名录。“百济历史遗迹地区”由分布在公州市、扶余郡、益山市3个地区的8个考古遗址构成。与公州熊津城有关的公山城和宋山里古坟群、与扶余泗沘城相关的官北里遗址及扶苏山城、定林寺址、陵山里古坟群、扶余罗城、位于益山市地区的泗沘时代百济的第二个首都王宫里遗址、弥勒寺址等。这些遗址展现了475年~660年之间百济王国的历史。被发掘的城郭,上下水道设施或供暖设施充分体现了当代文化水平。只是看修筑在城郭周围的道路,也能猜想到当时的城郭是多么的繁华。
       百济的名字源于隋朝的历史书《隋书》。《隋书》所记,“百济”有“百家济海”的意义。从中可知,百济是一个以海上贸易为基础的国家。其实,百济之后统一朝鲜半岛的新罗,也是一个与中东地区进行海上贸易的海上国家。与现在不同,朝鲜半岛曾是一个以海上贸易为基础的海上国家集合体,这一点可谓是大放异彩。

百济王室为了完善首都泗沘的弱点而建造的别宫遗址——王宫里遗址。


       在另一种意义上,百济文化的特点与拥有女性美的新罗不同,它虽然华丽、精美,但是散发着强烈的男性美。例如,弥勒寺址五层石塔之华丽与石窟庵精致之美的不同。佛像所展现出来的质朴美与只追求华丽、干练的新罗美有很明显的差异。当然,在精密方面,两个国家都拥有很高的水平。尽管如此,百济王朝的面貌在很多方面,仍然被遮盖在历史的迷雾之中。顺着气息,我们一起走向日本皇室之根、历史上神秘的王朝遗址吧。

图片资料提供:文化财厅

三国时期形成的700年王国 百济
       百济是韩国古代的一个国家。公元前18年建国至660年灭亡,700余年间,共有31位国王在位。百济初期是位于汉江(现首尔)中下游的小国,渐渐吞并周边国家,日益壮大起来。在汉江流域建造慰礼成并定都于此的百济,为了复兴国家,曾两次迁都至熊津(现公州)和泗沘(现扶余)。
       公元475年,百济被高句丽攻入失守京城被迫迁都至熊津,因此,公元前18年至公元475年,被称为汉城都邑期。公元475年起,定都公州的时期为熊津都邑期,之后公元538年迁都至泗沘,那段时期为泗沘都邑期。在熊津都邑期和泗沘都邑期内,百济通过海路同国外展开了积极的外交活动。在此期间,百济的科学和技术发展都有了长足进步,这使百济成为了繁荣发展的先进文化国家。但是在公元660年,百济被新罗和唐侵略,都城沦陷,在此后的三年里,百济展开了激烈的复兴运动。但最终百济未能恢复国权,国家就此灭亡。

       百济、高句丽和新罗,一同在韩国的古代文化发展中起到了核心作用。并且作为地处东亚的一个国家,百济还成为了文化交流的中心。百济接纳先进文化,并在此基础上进行改进创新,从而使文化水平达到了一个新的高度。同时百济发挥主导作用,向周边国家传播文化,为东亚文化发展做出了贡献。虽然百济这个国家最终还是灭亡了,但是百济人所创造的丰富文化遗产,仍在百济的故土上留下了不可磨灭的痕迹。曾经的京城,现如今的百济历史遗迹地区,作为百济文化的中心成为了孕育新文化的基础。
资料提供:韩国的古代王国百济(忠清南道 2010)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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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도시에서 친환경 관광도시로, 산시 다퉁의 성공적 변화에 글로벌 이목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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