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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명상 - 조(調), 균형을 찾아가는 변화의 순환



조화(調和)로운 사회는 동양이 꿈꿔온 최상의 인간 사회다.

그런데 정작 조화가 무엇인지 아는 이 드물다.

너무 곳곳에 널려 있어 그런지 모른다. 동양의 모두가 추구했던 조화는 우리 주변의 돌덩이다. 바로 자연(自然)이다.

한자로 자연은 스스로 혹 나 자(自)에 그럴 연(然)이 합쳐진 단어다.

한마디로 ‘나 같은’, 혹 ‘나인 나’란 의미다.

가장 나인 존재가 바로 자연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나인 상태로 있는 게 자연이고, 넓게는 모든 만물이 가장 스스로인 상태가 바로 자연이다.

결국 자연은 ‘만물이 스스로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다.

사물이 균형을 찾은 가장 편한 상태다. 그게 물리(物理)다. 사물의 이치다.

자연이란 세상 만물이 가장 편한 상태다.

 

다시 자연을 보라.

그 속의 ‘나’들은 ‘너’와 함께 ‘우리’를 만든다. 너라는 존재가 있어야 우리가 되는 것이다.

바로 자연은 나와 너가 우리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자연 속의 ‘가장 나인 나’의 존재는 ‘나’와 ‘나’ 사이의 평형, 서로 끌어당기되 부딪치지 않고, 서로 밀어주되 서로 버리지 않는 ‘우리’라는 관계로 존재한다.

 

 

자연이 바로 조화(調和)요, 평형(平衡), 균형(均衡) 상태의 구현이다.

세상 모든 물질이 존재하는, 존재하기 위해 추구하는 상태다.

물질이 안정적인 상태다.

 

이 평형은 밀어내는 힘과 당기는 힘의 줄다리기 속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자연의 평형은 불변의 평형이 아니다.

끝없는 역동의, 변화의 평형이다.

존재하는 ‘나’(自)들이 서로 만나 화학적 불균형이 초래되고

다시 사물의 이치(物理)에 따라 균형을 찾아가는 변화의 순환이 바로 조화다.

조화는 변화의 그래프가 만들어지는 그런 평형이다.

 

조화(調和)의 조(調)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조는 말씀 언(言)과 두루 주(周)의 회의자다. 자연처럼 한자 뜻만 보면, 간단히 ‘말씀이 두루 발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은 태초 신의 약속, 이치(理致)다.

말씀 언 한자는 따로 설명이 필요한 글자다. 인간사에 이보다 중요한 한자도 드물다.

두루 주는 방패 모양이지만 땅을 나눈 글자다.

농경지를 나눠 농사를 짓도록 한 주나라 제도에서 나왔다.

공간적으로는 세상에 고르게 적용되는 것을,

시간적으로는 농사의 반복되는 사이클을 의미한다.

 

조화의 조에서는 말씀이 고르게 작용하고, 되풀이 작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화의 조는 ‘말씀의 역(易)’인 셈이다.

역은 순환과 균형의 본질이다. 자연의 이치다.

 

 

결국 인간사에 있어

조화란 개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완성하며,

개인과 개인이 서로 작용하되,

균형을 갖추며 서로 끝없는 관계의 순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주 어느 곳에도 음(陰)만이, 양(陽)만이 존재하는 곳이 없으며

0만이 존재하거나 1만이 존재하는 산식도 없다.

 

모든 만물은 음과 양이 균형을 찾은 온(溫)의 상태에 존재하며,

산식도 0과 1인 같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심지어 0과1인이 동시에 존재해야 산식의 속도가 빨라진다.

 

결국 “세상 모든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명제나

“존재하는 않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명제는 조화사회를 가장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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