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삼성그룹의 시작 - 호암 이병철(28) (상)

한국비료와 이병철의 10년의 고난

한국비료와 이병철의 10년의 고난.

 

 

한국비료, 한국 산업에도 그렇지만, 이병철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사업이다.  얼마나 이병철에게 의미가 있는지, 한국비료 이야기를 하면서 이병철의 첫마디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비료공장을 한국비료라는 이름으로 울산에 완성시키는 데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한국비료에 대한 이병철의 술회다10년의 고난, 바로 한국 현대사의 급변과 맞물린 것이다. 계속 이병철의 이야기다1.19혁명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붕괴, 장면(張勉) 정권하에서의 정치, 사회의 혼란은 5.16 군사혁명으로 이어진다. 이나라의 역사는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부정축재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세금 추징이라는 명목의 재산몰수도 경험했다. 실의와 재가에서의 갈등, 10년은 바늘방석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이야기는 이병철의 이 10년간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 사회는 급속히 안정을 찾았지만, 경제는 여전히 미국 원조에 의존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원조가 영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병철은 수입대체 상품으로 제당과 모직 사업을 벌여, 값비싼 외제 상품을 대체하는 우리 상품을 내놓는다.

사회적으로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싸게 구할 수 있었고, 이병철 개인으로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것으로 한국 경제의 재건이 이뤄지기는 너무나 미약한 일이었다. 이병철은 1958년 한국경제재건연구소를 만든다. 삼화빌딩에 150평짜리 사무실도 냈다. 이병철이 회장이었고, 홍성하(洪性夏)씨가 간사장 직을 맡았다.

 

 

홍성하씨는 일본 중앙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독립과 함께 제헌국회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국회 경제재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모임에는 당대 이승만씨의 양아들을 자청했던 정치인 이기붕(李起鵬)씨 등 각계 각층의 당당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이병철이 비료 공장 건설의 꿈을 가진 것은 이 때의 일이다. 당시 한국은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농업생산은 해마다 늘었고, 비료의 소비역시 해마다 늘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지원을 받아 비료공장을 지었지만, 총 생산량은 6t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1년 한국 비료 소비량은 이미 30t에 달했다. 5년 뒤인 1966년에는 40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었다.

 

 

35t 정도는 생산해야 한다. 비료도 암모니아계가 아닌 비소계의 비료가 한국 토양에 더 적합하다.’ 이게 바로 이병철의 생각이었다. 당시 35t은 한국 전체 비료 생산의 6배 가량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병철은 그래서 수출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사회

더보기
"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문화

더보기
[영 베이징] '관광+ 문화' 융합 속에 베이징 곳곳이 반로환동 변신 1.
‘문화유적 속에 열리는 여름 팝음악 콘서트, 젊음이 넘치는 거리마다 즐비한 먹거리와 쇼핑 코너들’ 바로 베이징 시청취와 둥청취의 모습이다. 유적과 새로운 문화활동이 어울리면서 이 두 지역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바로 관광과 문화 융합의 결과라는 게 베이징시 당국의 판단이다. 중국 매체들 역시 시의 놀라운 변화를 새롭게 조망하고 나섰다. 베이징완바오 등 중국 매체들은 앞다퉈 두 지역을 찾아 르뽀를 쓰고 있다. “평일에도 베이징 시청구 중해 다지항과 동성구의 룽푸스(隆福寺) 상권은 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았다. 다지항의 문화재 보호와 재생, 룽푸스의 노포 브랜드 혁신이 시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올여름 열풍을 일으킨 콘서트가 여러 지역의 문화·상업·관광 소비를 크게 끌어올렸다.” 베이징완바오 기사의 한 대목이다. 실제 중국 각 지역이 문화 관광 융합을 통해 ‘환골탈퇴’의 변신을 하고 있다. 베이징시 문화관광국 자원개발처장 장징은 올해 상반기 베이징에서 ‘공연+관광’의 파급 효과가 뚜렷했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대형 공연은 102회 열렸고, 매출은 15억 위안(약 2,934억 6,000만 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