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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시작 - 호암 이병철(21)

이제는 제조업이다.
인적 자원 외에는 자원다운 자원을 갖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원자재를 수입하여 그 것을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하여 수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인적 자원 외에는 자원다운 자원을 갖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원자재를 수입하여 그 것을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하여 수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는 제조업이다.

 


“사장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3억 원 가량 비축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시고 싶은 사업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피난차 갔던 고향에서 이병철이 들은 말이다. 3억 원. 지금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당시 한국 상황에서 정말 일반인은 꿈도 꾸기 힘든 액수다. 한국에 80년까지 백만장자라는 말은 있어도 억만장자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이병철은 이에 이렇게 적었다.
“전락으로 인심이 자못 황폐해진 때가 아니던가. 이렇게 정직하고 믿음직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감동되어 가슴이 메었다.

 

 

익자삼우益者三友요, 손자삼우損者三友라 했다.
정직한 자를 벗으로 하고, 미더운 자를 벗으로 하고 견문 많은 자를 벗으로 함은 익이요. 아첨하는 자를 벗으로 하고 성실치 못한 자를 벗으로 하고 말만 앞세우고 실이 없는 자를 벗으로 함은 손이라고 했다. 또는 순경順境은 벗을 만들고 역경逆境은 벗을 시험한다는 말도 있다.
선인들의 가르침을 새삼 되씹게 되었다.

 

 

참 어느 말 하나 뺄 곳이 없다. 이병철 그가 얼마나 옛 지인들을 고마워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병철은 고마운 성의를 받아 새롭게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마침 3년간 한반도 전역을 불태운 전쟁도 끝이 난다. 1951 1월 서울을 다시 빼앗긴 유엔군은 격렬한 반격을 감행 2개월 뒤 다시 서울을 탈환한다. 그리고 388선 이북의 철원, 평강, 김화를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에서 격렬한 국지전으로 변한다.
 

 

이병철은 이런 상황에서 당시 가장 안전한 곳이었던 부산으로 가 새로운 시작을 모색한다. 국지전이 38선 위쪽에서 벌어지면서 부산은 전국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병철은 1951 1 10일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새로 설립한다. 삼성물산은 이미 서울에서 그 실력을 발휘했던 바 있다. 서울 삼성물산상회는 물거품이 돼 사라졌지만, 노하우만큼은 여전했다. 여기에 부산은 전국 피난민들이 모여든 새로운 소비의 중심지였다. 실력은 금방 현실로 나타났다. 삼성물산은 대구에서 마련된 2억 원을 자금으로 시작해 물과 1년만에 자본금 60억 원짜리 회사로 급성장한다.
 

 

하지만 이병철의 평가는 냉철했다.

운영비와 세금 등을 제외하고 전시하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큰 이득이라고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서전에서 고백처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허전함’이 이병철을 사로 잡았다. 사업은 순조로웠고, 전시 어려운 국민경제에 나름대로의 봉사를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무겁기만 했다. 그 때 떠오는 한 가지 생각이 이병철의 가슴을 때렸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비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하다가는 언제까지나 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화는 귀중하다. 우리 국민이 소비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적 자원 외에는 자원다운 자원을 갖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원자재를 수입하여 그 것을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하여 수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과 가공^생산시설을 갖춘 제조업이야말로 불가결의 것이 아니겠는가.

 


단순히 국내 필요한 외국물건을 사들이는 무역업만이 아닌, 만들어내는 것, 바로 제조업을 해야한다는 욕망이 이병철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이다. 제조업을 위해서 더 값싼 원료를 수입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사업 수익이 더욱 늘어날 것이고, 범국가적 차원에서는 자원이 없는 한국의 경제도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제조업, 좋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 과연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그나마 일본이 남겼던 제조설비마저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또 제조를 할수 있다고 쳐도 당시 극도로 수익이 낮았던 시절, 과연 한국의 피난민들이 무엇을 소비할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한번 이병철의 사업 감각이 빛난다. 일반인들이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낸 것이다.

 

필자 = 청로   사진 = 삼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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