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4월 1일 류샤오치에게는 ‘사면홍기’의 날이었다. 중국 전국 신문에 치번위가 쓴 ‘애국주의냐, 매국주의냐’라는 제목의 긴 장문의 평론이 게재된다. 내용은 청궁비사라는 영화 평론을 빗댄 류샤오치 비판 문장이었다. 문장은 류샤오치가 청궁비사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했다면서 류샤오치의 8대 죄악들을 열거했다. 류샤오치는 내용을 읽고 신문을 구겨서 바닥에 던진다. “아니 이 전부가 거짓말이다. 내가 언제 ‘청궁비사’ 영화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을 했다고 하다니, 이는 정말 무고다. 당내 투쟁이 언제부터 이렇게 하류에 머물렀던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용어는 내가 7차 전인대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다. 그 뒤 누구보다 마오쩌둥 사상의 확산에 기여해왔다. 이제와서 내가...” 류샤오치는 억울했다. “내 발언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나를 변호해야 한다. 당 중앙 간부가 변호를 해야 하고, 인민들이 변호를 해줘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내게 이 나라, 이 인민, 이 당의 공정한 몇마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류샤오치의 소망과 달랐다. 1967년 4월 6일 저녁 홍위병 조반파가 류샤오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절반만 죽자. 목숨 값이 얼마인지 누가 싶게 결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로부터 목숨을 거는 최선의 일로나라를 위한 일을 꼽았다. 여기서 나라하니까, 추상적이지 간단히 보면 많은 남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본래 나라라는 게 그 속의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그 땅위에 사는 이들의 수가 적으면 작은 나라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큰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의 적지 않은 나라다. 북한을 합치면 잘 하면 인구 1억 명에 달하는 나름 대국이 될 조건도 갖추고 있다. 다시 목숨 값이 이야기다. 옛날 돈만 아는 자린고비가 있었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물로 소문이 났다. 하루는 그 소문을 이웃에 사는 부옹(富翁)이 듣게 됐다. 부옹은 한자 그대로 돈 많은 노인이란 뜻이다. 오늘날 재벌 오너가라 생각하면 된다. 이 부옹이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웃 자린고비를 찾아 제안을 했다.; “자네 내가 황금 1000냥을 그냥 주지. 하지만 반년뒤에는 내가 자네를 두둘켜 패 죽인다면 그 황금 1000냥을 받겠는가?” 부옹의 말을 들은 자린고비가 짐짓 심각한 듯 반나
제발 아내만은 건들지 마오 류샤오치의 비판이 거세지던 1966년 12월 18일 결국 왕광메이를 조사하는 특별 조사부가 신설된다. 한국으로 치면 ‘왕광메이 특검’이 시작된 것이다. 왕광메이는 류샤오치의 6번째 부인이다. 중국이 나은 학자요, 정치가였다. 1948년 류사오치와 결혼해 1969년 사별하기 전까지 류사오치와 1남3녀를 두고 살았다. 공산 중국 건국 초기에는 마오쩌둥도 아끼던 여성 인재로 꼽힌다. 무엇보다 일찍이 미국 유학을 영어를 잘했다. 공산당 활동도 미국과 군사 협상에서 공산당측 통역을 맡으면서 이뤄졌다. 그의 영어 실력을 마오쩌둥도 감탄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왕광메이를 아끼는 마오쩌둥에 마오의 부인이 장칭이 질투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장칭은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 중 한 명이다. 당대 중국 최고 권력인 마오쩌둥의 아내였다. 왕광메이는 통역 과정에서 미국에 간첩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로 이 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조사의 끝에는 류샤오치가 있었다. 왕광메이는 1967년 1월 6일 돌연 중학교를 다니던 딸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놀란 왕광메
소원을 들어줄게, 돈 빌려달라는 소리만 빼고. 돈이 전부인 세상이다. 인류가 돈이란 걸 만들어내고 세상은 그렇게 변했다. 세상에 최초 돈이 등장한 이래 그랬던 듯싶다. 친구사이가 좋아 어떤 말도 못할 말이 없고, 들어주지 못할 사항이 없다고 해도 돈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돈이란 게 무엇인가? 허상이요,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이다. 돈이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돈과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이 가치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 생긴 이래 돈으로 바꿀 실물은 보지 못하고 돈만 본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가치의 척도로만 돈을 보는 태도다. 돈을 갖는 것은 실물을 갖는 권리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옛날 한 마을에 두 자린고비가 절친으로 살았다. 하루는 두 친구 중 한 명이 병이 났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병문안을 했다. 친구를 찾아보니 얼굴에 수심이 그득했다. 병 문안을 온 친구가 황급히 물었다: “아니 무슨 근심이 이리 병이 깊게 들도록 했는가? 무슨 일인지 말해주시게 내가 뭐든 해보겠네.” 아픈 친구가 힘없이 답했다: “아니 무슨 일이 있겠는가. 돈이 문제지. 내가 급히 쓸 일이 있는데 1000냥이 없다네. 혹 자네가 빌려준다면 일 처리가 끝
돈이 귀중한 게 아니라, 그 것과 바꾸는 대상이 귀중한 법이다. 돈이란 게 참 그렇다. 사람들이 가치를 정하기 위한 약속인데, 사람들이 그 약속에 목을 맨다. 돈을 위해서 뭐든 하려고 든다. 때론 실제 목숨도 돈과 바꾸려한다. 옛날 한 자린고비가 비가 오는 날 급히 도랑을 건너다 동전을 빠뜨렸다. 놀라 돌아보니 동전은 돌다리 사이에 떨어져있었고 저 멀리에서는 비에 강물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었다. 몸을 돌려 다시 돌다리로 가기에는 불어난 물에 휩쓸릴 위험이 컸다. 하지만 자린고비 눈에 돈이 먼저 보였다. 자린고비가 생각하길, ‘머뭇거리다가 자칫 물이 더불어나 동전을 찾을 수 없겠어!’ 모든 사람이 위험을 볼 때 자린고비는 기회를 본 것이다. 결국 자린고비가 몸을 날려, 돌다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손으로 동전을 잡는 순간, 거대한 물덩어리가 자린고비를 덮쳤다. 물 소용돌이에 휩쓸린 자린고비가 서너번 허덕이다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며칠 뒤 자린고비는 강 아래 나무통 위에 걸친 채 발견됐다. 이미 숨은 끊어진 채였지만 주먹을 꽉 쥔 손에는 동전 한 닢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아 이 사람 정말 동전 한 닢에 목숨을 바꿨구먼.” 돈은 결국 바꾼 것에 대한
문화대혁명의 불길은 타오르고 “제 자아비판은 총 3개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 1966년 10월 23일 중앙공작회의에서 류샤오치의 발언이다. 이날 류샤오치는 마오쩌둥이 지시한 그대로의 자아비판 검토서를 제출한다. 류샤오치의 검토서는 그의 생 전체에 대한 비판이 담긴 것이었다. 류샤오치는 먼저 마오쩌둥과 갈등 발생 직후 문화대혁명이 발생한 50여일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아비판을 한다. “무산계급의 문화대혁명 발발 직후 저의 잘못은 노선의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이 잘못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두 번째로 류샤오치는 이 같은 노선의 선택의 문제가 자신의 오랜 잘못한 생각에서 나왔다고 자아비판을 한다. “두 번째 부분은 제 오랜 활동 속에 원칙과 노선에 대한 역사적 잘못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946년 동북전선에서 임표에 대한 지도가 부족했고, 지난 1949년 톈진에서 행한 연설에는 우경화 사상의 깃들어 있었습니다. 1962년에는 우경화의 잘못이 드러났고, 1964년에는 형식만 좌이며 실제로는 우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류샤오치는 이 같은 생에 걸친 우경화에 잘못에 대한 원인으로 결국 충분치 못한 무산계급에 대한 학습, 마오쩌둥
생이 참 묘하다. 고해(苦海)엔 데 그 속에 있는 행복이 달콤하기만 하다. 그래서 살고 있고, 살아가려 한다. 그래 필요한 게 술이다. 술은 고해를 잠시 잊게 하고, 잠시의 행복 속에 머물게 도와준다. 그 속에 현실을 잊고, 자신도 잊어버린다. ‘몰아지경’(沒我之境) “艰难苦恨繁霜鬓, 潦倒新停浊酒杯。” (간난고한번상반, 요도신정탁주배) “귓가에 핀 백발가락, 술잔만 들고 멍하니.” 두보의 시 ‘등고’(登高)의 한 구절이다. 술을 마시려 하지만, 늙고 병 들어 술 잔만 들고 더 이상 마시지 못하는 늙은 나그네의 심정을 그렸다. 이처럼 처량한 인생이 있으랴. 인생의 고해 속에 담금질 된 술꾼에게는 둘도 없는 형벌이다. 술 향이라고 맡기 위해 잔을 따르는 심정, ‘빈잔 들고 취해야 하는’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이는 알 길이 없다. 술이 가져오는 경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속에서 자신을 잊게는 게 아니라 잃고 만다는 게 문제다. 그게 ‘취(醉)’의 묘미다. 자신을 잊어도 그렇지만, 자신을 잃으면 술이 연장해준 행복의 기억은 남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술을 찾게 된다. 마약쟁이가 마약을 찾듯…. 인생의 묘미(妙味)인 술은 인류의 생이 시작한 순간, 같이 시작됐고 인
얼굴 초상화를 그리면서 반만 그린다. 그럼 초상화라 할 수 있을까? 얼굴 반만 보이는 초상화는 초상화라 할 수 없다. 그렇다. 하나의 기준이다. 반쪽으로는 아무리 해도 하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때론 반쪽은 누가 뭐래도 하나는 아니다. 물론 조금 모자랄 수도 있다. 실은 세상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완벽한 하나란 없다. 대부분 조금씩 모자라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은 아니다. 반이 모자란 것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하나인척해도 하나는 아닌 것이다. 옛날 중국 시골마을에 자린고비 영감이 살았다. 하루는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서 화가를 청했다. 하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화가에게 말했다. “화가 선생, 보통 초상화 하나를 그리려면 얼마면 되요?” 화가가 말했다. “그게 잘 그리는 정도에 달렸지요. 상급이면 금화 10량, 중급이면 금화 5량, 하급이면 은화 10량이면 됩니다.” 말을 들은 자리고비 영감이 놀라 생각했다. ‘아니 무슨 초상화가 그리 비싸냐.’ 그리고 말했다. “음. 내가 실은 은화 5량밖에 없어서...그래서 말이요.”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 말을 듣던 화가가 자리고비 영감의 뜻을 알아채고 말을 잘랐다. “
예는 도가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가치다. 노자는 도를, 공자는 예를 주장했다. 법가는 예가 성하지 않는 세상의 가장 큰 덕목이다. 도는 본래 이름이 없고, 정의(定義)가 없는 정의(正義)다. 그래서 어떻게 성하게 할지 인간의 문서로, 규약으로 정하기 어렵다. 도는 말로 전해지고, 행동으로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서로 규정할 수 있는 상덕은 예에서 시작한다. 공자가 예를 중시한 이유다. 고대 예는 사람이 ‘혼인’에서 시작한다고 봤다. 혼례는 두 집안이 만나 새로운 집안을 형성하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생산행위’다. 혼인이 있어야 아이를 낳고, 아이들은 커서 사회 생산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가 된다. 고대 혼례는 ‘육례(六礼)’를 기본으로 했다. 훗날 주자는 이를 ‘삼례’로 절차를 간소화한다. 육례는 한 단계 한 단계가 혼례를 앞둔 남녀 두 집안의, 두 집안의 혼례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의 관심사가 됐다. 집안의 규모가 크면 한 나라의 관심사가 됐다. 그래서 고대에는 “혼례는 부자를 친하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육례는 납채(纳采), 문명(问名), 납길(纳吉), 납징(纳征), 청기(请期), 친영(亲迎)을 말한다. 납채(
본래 준만큼 받는 게다. 투자한 만큼 버는 게다.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 하면 그게 도적놈 심보다. 주지도 않고 받으려 하면 그 건 뺏는 것이다. 강도 심보다. 옛날 동양의 한 마을에 자린고비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천지인 삼신(三神)에게 복을 비는 제를 지내고자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음식이 아까웠다. 소도 잡고, 돼지도 잡고 닭도 잡는데, 정작 신이 먹는지는 불투명했고, 집안의 종복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다 먹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를 의뢰하는 도사에게 슬쩍 물었다. “음... 이게 꼭 온갖 음식을 다해야만 하는가? 그러지 않고 제를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눈치 빠른 도사는 자린고비 부자가 무슨 심보로 그렇게 말하는지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말을 했다. “아이고 그럼요. 물로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도사는 제를 지내는 보수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말을 들은 자린고비 부자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아 그럼 바로 지내도록 하지.” 그리고 제삿날이 됐다. 도사 제상 가득 물을 받아놓고 기원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사상의 음식을 신께 바치는 의식을 시작했다. 도사가 말했다. “아 삼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