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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과 하(下)가 한 세상을 만든다. 무엇이 높은가? 3

사물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며, 그 선후를 하는 것이 바로 도에 가까우니라. 대학의 말씀이다. 가장 단순한 한자 상과 하가 알려주는 것은 바로 도에 가까운 삶을 살도록 방법이다. 서구와 다른 동양적 세계관이 한자 상과 하에 담겨 있다. 

 

 


 

 

살면서 어디서부터 높은 지 알면 올라가기도 쉽고위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기도 편하다아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살기 일쑤다. 한 개인 스스로가 삶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가져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 기준이 없는 이들이 불안해하고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이 단순한 진리도 매번 욕망에 휘둘리고 나서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그게 삶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게 한자의 역할이다. 한자를 가까지 하다 보면, 다시 한번 잊어버린 진리들을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다시 중용의 궤도에 오를 기회를 갖는다. 중턱 기슭을 찾는 지혜, 자족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중용이다.
상하는 그 모양이 단순하고 뜻이 쉽지만 그 속에는 정말 복잡하고 꽉 찬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본래 서예에서 획이 단순한 자는 크고 꽉 차게 쓰고, 복잡한 자는 성글게 쓰라는 법칙이 있다. 이 서예에 법칙은 한자의 이런 특성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한문의 세계는 단순함 속에 오묘함이 있고, 복잡함 속에 단순함이 있다. 처음과 끝으로 전체를 이야기한다. 중간을 뺀 것이 아니라 극단적 특징으로 중간만 이야기 한 것이다. 이름 없는 수많은 중간을 이름 있는 처음과 끝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 일반적 도리, 상도(常道)는 언급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동양과 서양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누가 더 낫다고 하기 보다 정말 다르다. 문(文)의 세계관이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폐기라는 단어다. 우리가 요즘 스위치(switch)라는 단어를 써 오히려 낯설지만, 한자를 배운 세대에게는 친숙한 단어다. 방 안에 전등을 켜고 끄는 게 바로 개폐기, 스위치다. 그럼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개폐기라는 단어는 열린 () 닫을 () 합친 것이다. 한마디로 열고 닫는 기계라는 뜻이다. 상하에서 보여주듯 한자의 세계관은 열고 닫는 것으로 열고 닫히는 중간의 모든 변화를 이야기한다. 다만 개폐기라는 작은 기능 속에서 그 중간의 변화가 강조되지 않을 뿐이다. 
이에 반해 영어의 스위치는 열고 닫는 경우의 수를 이야기 하지 않고 변화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스위치라는 단어는 열고 닫는 변화 외 모든 변화를 의미해 더 편해 보인다. 실제 스위치는 변화를 야기하는 기계 또는 단추라는 의미로 쓰인다. 변화의 끝을 이야기 하지 않고 중간만 이야기해 얻은 효과다. 우리 동양의 한문적 세계관과 서양의 스위치적 세계관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서구식 언어의 세계관과 동양식 한자의 세계관은 이렇게 같은 것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두 사고법 모두 장단점이 있다.” 

차이가 있어 공통점도 생긴다. 동양이나 서양 두 가지 사고 모두 중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접근법이 다를 뿐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변화의 양극단이 달라지면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불편해 보이지만, 한자적 세계관의 장점이기도 하다. 양극단을 분명히 중간의 변화도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하가 세로 선을 규정한다면 좌우라는 개념은 가로 선을 규정한다. 그래서 조직의 상하좌우라는 하면 보다 입체적인 조직도가 동양의 머릿속에는 그려지는 것이다. 이 같은 한자적 세계관에서는 그래서 영어보다 더 다양한 어휘들이 나온다. 
예컨대 '고금', '춘추' 등 역사라는 개념, 시간이란 개념의 어휘들이 그렇다. 고금은 옛 것과 현재 것을 통해, 춘추는 봄과 가을을 대표해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역사를 의미하지만, 각자 주는 이미지가 분명히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춘추는  해의 인간의 생활에 두드러진 특징을 강조했다 싶어 더 살갑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이런 동서양의 언어적 특징이 서양의 과학 중심 사고와 중국의 인문 중심 사고를 낳았다 싶다. 한자적 세계관은 양극단으로 대변되는 세계의 규칙들이 그 중단들에게 예외없이 적용된다. 바로 귀납적 사고의 전형이다. 반면 서양의 세계관은 중간의 특징이 다양한 방향으로 퍼져갈 수 있는 연역적 특징을 보여준다 싶다. 
연역적 사고와 귀납적 사고는 모두 대표적인 논리적 사고방식이지만, 그 차이는 크다. 
한자는 한 세대가 사용해 검증한 사고를 다음 세대로 전해왔다. 그래서 그 의미를 후인들이 되새기게 한다. 한자를 전승한 후생들은 스스로가 문자와 그 글자의 근원을 곰삭히면 되는 것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수천 년을 지내며 각 세대가 사용과 그 결과를 그 글자의 의미에 담아 전승했다. 한자는 그야말로 인간의 언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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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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