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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사건 논란 겪은 리펑 전 총리 사망

6·4 사건으로 많은 논란을 겪은 리펑 전 총리(李鹏)가 사망했다. 향년 91세.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펑 전 총리가 22일 오후 11시11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리펑은 중국 공산당의 우수한 당원, 오랜 세월 검증된 충성의 공산주의 전사,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인,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했다.

 

1928년 10월20일 태어난 리펑은 본명이 이원펑(李远芃), 본관은 후베이 마청으로 상하이 법조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석훈(李硕勋)은 중국공산성 당서기를 담당하다가 1931년 신분노출로 국민정부에 체포돼 처형됐으며, 리펑은 연안으로 보내졌다. 항간에는 리펑이 저우언라이(周恩来) 전 중국 국무원 총리와 부인 덩잉차오(邓颖超)의 양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리펑이 2014년 출간한 신간 리펑 회고록에서 이를 부인했다.

 

리펑은 '열사 자녀'로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소련 모스크바 동력학원 수력발전계에서 공부해 중국유소학생총회 의장을 지냈다. 1950년대부터 기술관료로 오랫동안 전력사업을 해왔으며, 전력공업부장, 국가교육위원회 주임,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다.

 

중국 공산당 12기 5중전회에서 리펑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에 추가로 들어가 13, 14, 15기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됐다. 1987년 중 13대부터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고, 1998년 3월 두 번 총리 임기가 끝나면 헌법상 연임이 불가능하므로, 리 위원장은 전인대 위원장을 맡아 장쩌민(江泽民) 당시 총서기에 이어 당 서열 2위를 유지했다.

 

2003년 3월 74세의 리펑은 전인대위원장을 그만두고 정계를 떠났다. 리펑 은퇴 후 '중지화홍도: 리펑삼협일기'와 '시작부터 발전까지: 리펑원전일기', '전력선행: 리펑전력일기', '입법 및 감독: 리펑인대일기', '시장과 조절: 리펑경제일기', '평화발전협작: 리펑와사일기' 등 여러 권의 회고록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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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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