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유력한 텔레비젼 방송중 하나인 TVB는 지난 8일 홈페이지를 통해, 홍콩인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하나를 올렸다. 바로 올해 2020년 미스홍콩 선발대회 (香港小姐竞选 , Miss Hong Kong Pageant )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스홍콩 미인대회는, 지난 73년 첫대회 이후 지난 해까지 47번 열리는 동안, 취소 적은 물론, 단 한번도 개최 일정이 변경된 적이 없었기에, 그 것 만으로도 홍콩주민들이 충분히 놀랄만 한 뉴스였다. 4월 초에 올해 미스홍콩 미인대회가 취소됐다는 외신을 접한 다수 한국인들은, 아마 이 대회가 이번달 이나 5월쯤 열릴 예정이어서, 현재 코로나사태로 보아 5월 달에도 안심할 수 없기에 취소한 것 쯤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아니다. 홍콩 주최측은, 코로나19 판데믹현상이 적어도 7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판단 했기 때문이다. 미스홍콩 미인대회는 하나의 TV방송사가 단독 주최하기 때문에, 방송사 시청률과 대회 홍보를 극대화 하기 위해 대회를 두번으로 나눠 개최한다. 매년 7월 초에 , 신청자중에서 15명의 후보를 뽑아 먼저 준결선대회 생중계한다. 상금등 대회준비에 많은 투자금이 들어가므로, 관련 방송 프로들
옛날 중국 한 마을에 부자가 있었다. 당대에는 서당 선생을 모시면 쌀이나 먹을 것으로 수업료를 냈다. 이 마을에서는 7월 7일 칠석날에는 서당 선생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 마을 제일 부자는 중국 천하에 소문난 자린고비였다. 선생을 초대해 대접하는 게 싫어 칠석날이면 곡기를 끊기 시작했다. 자연히 선생을 초대할 일도 없었다. 그러자 서당 선생이 화가 났다. ‘저 놈의 부자 야박하게도 이럴 수가 있는가. 수업을 받으면 수업료를 내야지. 괘씸하구나.’ 참지 못한 선생이 수업을 듣는 마을 제일 부자의 아들에게 고상하게 꾸짖었다. “어허, 객사(서당 선생이 머무는 곳)가 처량하니, 어느새 칠석이구나!” 선생의 말을 들은 학생이 부친에게 말을 전했다. 칠석임을 알리는 서당 선생의 뜻을 부자가 모를 일이 없었다. 입가 웃음을 머금은 부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이고 어느새 칠석이군. 내가 선생 대접에 소홀했구나. 집안이 썰렁하니, 사람 북적이는 8월 15일 중추절에 다시 뵙자고 전해 드려라.” 결국 중추절이 됐다. 선생이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역시 자린고비 부자의 초청 소식은 없었다. 선생이 다시 부자의 아들을 불렀다. “기다린 건 아니지만
“같이 살아야 오래가는 것이다.” 저 하늘 아래, 이 땅 위에 과연 무엇이 혼자 살 수 있더냐? 먹이 없이 나는 새가 어디 있으며, 물이 없이 자라는 나무가 어디 있더냐? 태양 없이 자라는 꽃이 없고, 바다 없이 크는 물고기가 없다. “天长地久;天地所以能长且久者;以其不自生;故能长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하늘과 땅이 오래고 오래도다. 하늘과 땅이 오래고 오랜 것은 스스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의 가르침이다. 혼자 살지 않기에 땅과 하늘이 오랜 것이다. 비와 먹이를 주기에 저 하늘에 새들이 날고, 이 땅에 식물이 자라고, 저 바다에 물고기가 헤엄친다. 그래서 저 하늘과 이 땅이 오래고 오랜 것이다. 하늘이 키운 식물은 동물을 키우고 식물로 자란 동물은 다른 동물을 키우고 식물의 씨앗을 번식케 한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고, 동물은 땅으로 돌아가 다시 식물을 자라게 한다. 이런 순환을 이어가기에 저 하늘과 이 땅이 오랜 것이다. 내 삶에 네 삶이 필요하고, 네 삶에 내 삶이 필요할 때 우리는 오랠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천장지구'에 대한 가르침이다. 노자는 중국에서 도가의 태두이며 공자의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
2020년 4월, 중국 15억 인민은 예년과는 많이 다른, 특별한 의미의 청명절한식을 맞았다. 3일동안의 청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4일, 중국정부와 인민들은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추도하는 특별한 의식을 수행했다. 중국시간 10시 정각, 3분 동안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기차 선박 등 교통수단들도 일제히 멈춰, 희생자를 기리는 경적을 울렸다. 종묘제사에서, 편종을 울리는 제례악으로 혼백을 위로하는 것과 같은 예법인 셈이다. 중국 국내의 기관들은 물론 전 세계에 나가있는 중국공관들도 국기게양대의 오성홍기를 반기(半旗,조기, 弔旗)로 내렸다. 중국 칭밍지에(淸明節, 청명절)는, 춘절(春節, 음력설)과 중추절(仲秋節, 추석)과 함께 동양문화권 국가들에서 3대명절로 꼽는다. 1년 24 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 매년 4월 5일 전후이다. 청명절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省墓. 성묘) 음덕을 기리고 영령을 위로한다. 청명절에는 항상 한식(寒食)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매년 청명절과 같은 날이거나 전후이다. 그래서 ‘거의 때가 같다’라는 얘기를 할 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
오르고 또 오르고 싶은 게 사람이다. 위로, 위로 오르고만 싶다. 능력이 모자란 게 한(恨)일뿐이다. 그런데 묘한 게 오르고 올랐는데, 또 그 위에 뭔가가 있다. 이제 정상이다 싶었는데, 그 옆에 더 높은 봉우리가 나를 내려다본다. “넌 아직 멀었어!”하듯. 그럴 때 정말 힘이 빠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야 인생의 정상일까?’ 맞다. 역시 답은 문제에 있다. 왜 모든 산의 정상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 인생에는 정상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내 주변의 수많은 봉우리들을 보다 보면, 가소로운 게 바로 내 아래 것들이다. 내가 정말 죽을 둥 살 둥 기를 쓰고 여기까지 와서 보니 다시 더 높은 저 많은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아직도 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한 것들이 수없이 많다. 여기까지 올라온 내가 주변의 수많은 더 높은 봉우리들을 보면서 ‘쉬면 안 되겠다. 다시 더 올라가자!’ 다짐을 하는 데 아래 수많은 것들은 그저 틈만 나면 쉬려고만 한다. 아쉽고 아쉬운 게 아래 것들이다. ‘뭐 그래서 아래 것들이지 …’ 하지만 얼마나 황당하고 철이 없는 생각인가. 자연을 관조하고 그에 비친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연히 반성을 하게 된다.
중국이 마침내 베이징 주재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3명을 추방한 것에 대해 미 백악관이 대응 회의를 벌였다. 월스트리트저널 사태는 신문이 최근 논평에서 중국을 ‘아시아의 진정한 병자’라고 비평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이미 이 같은 조치를 경고하며 사과를 요구했었지만, 신문은 “언론의 자유, 말할 권리를 막는다”며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의 언론 통제는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우한폐렴, 신종코로나 전염사태에서 중국의 언론 통제는 국제사회에서 “전염병 확산에 기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연 이번 월스트리트저널 사태는 ‘미중 신문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래서 중국의 언론 자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인가 주목된다. 26일 환추시바오 등 중국 매체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 등에 따르면 매슈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24일 회의를 주재하고 중국 당국의 월스트리저널 기자 추방 조치에 대해 논의했다. 앞서 19일 중국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온유정, 리자오화, 차오덩 등 3명을 추방 조치했다. 이 신문이 지난 3일자 ‘중국은 아시아의 진정한 병자’라는 제목의 컬럼이 국가를 모독했다는 게
"인간이 세상 만물 속에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삶에 있어 ‘시간’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있을까? 인생이 그 자체가 한 사람의 시간이고, 삶과 죽음이 시간에 있다. 그 삶 속의 모든 것도 시간이다. 모든 일의 성패가 1분, 1초 시간 차이에 갈리기도 한다. 세상 만물 이렇게 시간에 달렸다. 도대체 시간은 언제부터 우리 삶에 들어왔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하늘 천(天)을 통해 시간을 배웠다. 시간은 하늘에 있고, 하늘에서 나왔다. 하늘 공간의 변화가 바로 시간이다. 해의 하루 변화를 일(日)이라 했고, 달의 변화를 월(月)이라 했다. 별의 변화를 절(節)이라 했다. 절이 쌓여 한 해(年)가 되고, 한 해가 쌓여 역(歷)이 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시간의 전부인가? 하늘의 시간에 호응하는 땅의 시간이 더 있다. 이 땅의 만물은 하늘의 시간을 사는 게 아니다. 하늘의 시간에 호응하는 땅의 시간을 산다. 같은 소나무여도 평지의 소나무는 하늘로 곧게 뻗지만, 저 높은 산정 절벽의 소나무는 이리 굽고 저리 굽어 산다. 묘하게 구부러짐은 그 소나무의 삶의 흔적이다. 역경의 흔적이다. 소나무는 소나무가 자라는 지역에만
하늘은 시간일까? 공간일까? 도심 속 우리가 잊고 사는 게 하늘이다. 하늘의 푸르름, 고즈넉한 하얀 구름은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있지만 하루 한 번 보는 이 드물다. 항상 머리 위에 있어 그저 고개만 들면 되는데…, 그런 여유가 없다. 도심의 우린 1분의 여유가 없다. 푸르고 높고 가없는 하늘은 그렇게 우리 도시인에게 잊혀있다. 대신 우린 매일 쫓고 쫓기며 산다. ‘빵빵’이는 자동차처럼 서로가 서로를 재촉한다. 출퇴근길 버스를 위해 달리고, 식당 줄을 서기 위해 달린다. 쫓기며 사는 우리가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늘을 잊은 우린 시간에 쫓기며 산다. 정확히 하늘의 시간을 빼앗긴 우린 땅의 시간에 쫓기며 산다. “하늘이 공간일까? 시간일까?” 도심 우리에겐 좀 뜬구름 없는 이야기다. 질문이 그렇다. ‘하늘이 공간일까? 시간일까?’라니, 역시 우리가 잊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한국인이 잊어버린 이야기다. 한자 하늘 천(天)의 이야기다. 서양에서는 하늘은 sky, 시간은 time이다.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구글링으로 찾아본 영어 sky의 어원은 고대 게르만어 scuwo (region of the clouds) 및 고대 노르만
“한자란 수천 년 인류의 지혜를 담아 전하는 USB다.” 한자에 대한 생각이다. 간단히 참 진(眞)자를 보자. 참되다는 게 무엇일까? 우리의 먼 선조들은 무엇을 보고 이 글자를 참이라는 뜻을 갖도록 했을까? 갑골문에서 참 진은 시체를 의미한다. 그럼 어떻게 시체가 참되다는 뜻이 됐을까? 언제부터 참되다는 뜻이 됐을까? 자연히 이런 의문들이 든다. 그리고 그 의문들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참 됨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참 진을 제대로 알면 ‘무엇이 참됨’인지 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수십 수백편의 논문을 써도 정의가 쉽지 않은 ‘참됨’이라는 의미를 한자 한 자가 가르쳐주는 것이다. 무엇이 한자에게 이런 기능을 갖도록 했을까? 한자는 인간 스스로의 ‘딥런닝’ 과정을 극도로 압축했기 때문이다. 한자가 이 땅에 만들어 쓰인지는 대략 5000여 년 전이다. 본래 한자는 고대 주변의 산과 강 등 주변의 사물과 각 종 동물과 기구의 모양을 본 따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글자들이 모여 다시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 갔다. 이 과정은 인류의 생활이, 의식이 복잡해지는 과정과 같다.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사용하는 물건이 다
“사회 안정과 분위기 전환을 위해 노력해 달라. 어려운 일이 많다. 열심히 해 성과를 내 달라. 중앙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 5일 시진핑 주석이 최근 홍콩 사태와 관련한 중국 내륙의 방침을 확인하고자 베이징을 찾은 캐리람 홍콩행정수반에게 이 같이 말했다. 사실상 현 홍콩 행정부의 조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한 마디처럼 홍콩의 미래에 대해 분명히 말해주는 게 없다. 중국의 생각은 분명하다. 홍콩은 중국이 원하는대로 통치되야 한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캐리람 수반을 처음 만났다. 시 주석의 태도로 볼 때 결국 홍콩 사태는 한동안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이 캐리람 행정수반은 시 주석의 과거 말을 인용해 화답했다는 점이다. 캐리람은 시 주석에게 “국가 기본 권리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당 중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떤 행위도, 내륙의 안정을 해치기 위해 홍콩을 이용하는 어떤 행위 마지노 선을 건드리는 것이다.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