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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시와 경제 17 - 살라미에 무너지는 경제와 인생

나치독일 때 선량한 국민과 미지근한 물속의 개구리

 

속이 시커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그는 금융기관에서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이자 가운데 소수점 아래의 작은 금액을 떼어내, 자기가 정한 계좌에 자동적으로 송금하도록 이자지급 프로그램을 짰다. 워낙 작은 금액이라 예금자들은 물론 금융기관들도 눈치 채지 못했다. 눈치 챈 사람이 가끔 있었지만 굳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내 손해가 크지 않은데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는 ‘자기보호본능’에 충실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계좌는 날마다 부쩍부쩍 불어났다. ‘티끌모아 태산’이란 속담을 악용한 이런 착복방법을 ‘살라미 기술(Salami technique)’라고 부른다.

1950년대, 냉전 초기에 헝가리 공산당은 국회의원 총선에서 17%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라코시 마차시는 소련을 등에 업고 내무부장관을 꿰찬 뒤 비밀경찰을 만들어 정적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회유와 협박 등으로 제거했다. 결국 그는 헝가리를 통째로 소련 중심의 공산권에 갖다 바쳤다. 헝가리 국민들은 1956년, 인권탄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공산 독재투쟁을 일으켰으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무자비한 진압으로 정당한 저항은 피로 물든 채 실패했다. 김춘수 시인은 그 비극을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이란 시로 애도했다.

히틀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지지했다가 반대운동을 이끌었던 마르틴 니묄러(1892~1984) 목사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를 남겼다.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주장하며, 국민들의 생활을 옥죄는 독재정치를 강화해나갈 때, 많은 국민들은 물론 지식인들이 저항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치를 용인한 것이었고, 그들 스스로가 피해자가 됐음을, 시는 풍자하고 있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개구리를 갖고 한 실험이 있었다. 먼저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깜짝 놀라 뛰어 나온다. 그냥 있다간 삶아져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으면 행복하게 헤엄치며 논다. 이제, 개구리가 모르게 물을 천천히 데워 온도를 높이자 개구리는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계속 헤엄을 즐기다가, 결국 즐거운 미소를 남기고 죽는다. 이 실험은, 아주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무심하게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놀라지만 결국 피해자가 되고 마는 사람들을, 풍자할 때 거론된다.

피자를 먹을 때 웃기의 하나로 얹는 ‘살라미’라는 게 있다. ‘이탈리아식 말린 소시지’로 번역되는 살라미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고 다양한 향신료와 섞어 껍질 속에 넣은 뒤, 바람에 건조시켜 만들어(헝가리에선 황태처럼 겨울바람에 말려 ‘윈터 살라미’라고 부른다), 얇게 썰어 먹는다.

 

이렇게 먹는 방법을 응용해, 이견이 큰 사안을 통째로 다루지 않고 부분별로 세분화해서 다룸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협상기술을 ‘살라미전술(Salami Tactics)’이라고 한다. 자기의 논문을 소주제별로 나누어 여러 개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도 자기표절의 대명사인 살라미로 부른다. 또 논문 가운데 덜 중요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을 모아 큰 덩어리로 만들어 뭔가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은 ‘이말라스(Imalas)’라고 한다. salami를 그대로 뒤집어 만든 말이다.

국회의 회기(會期)를 여러 개로 쪼개,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하려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무력화시키는 방법도 살라미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놓고,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의 뜻에는 아랑공하지 않고, 필리버스터와 살라미로 ‘꼼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 파렴치한 자화상이다.

 

살라미/ 如心 홍찬선

 

살라미는 억울하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오랫동안 먹기 위해

지혜에, 지혜를 모아 만들어

300년이나 사랑받고 있는데

 

살라미기술이라 욕먹고

살라미전술이라 손가락질 당하고

살라미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킨다며

알쏭달쏭하게 풍성한 말잔치에

 

살라미는 울화통 터진다

먹는 것은 신성하게 다뤄야 하고

먹는 것 갖고 장난하면 안 된다며

종아리 맞던 게 생생한 데

 

살라미가 하소연 한다

살라미로 착한 사람들 억울하게 만들지 말고

살라미로 억울한 사람들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살라미로 경제를 흔들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한 노교수는 대학 다닐 때 ‘인생에 대해 논하라’는 기말고사 시험지에 양파를 멋지게 그려놓았다. 결과는 의외로 A+였다. 까고, 까고 또 까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생도 겪고, 겪고 또 겪어도 비슷한 일을 경험하고 잘못된 일을 되풀이하는 아니냐는 식의 답안지였고, 그 의미를 알아챈 교수가 A+를 준 것이었다. 요즘 그랬다가는 SNS를 장식하겠지만, 당시엔 대자보 하나 붙지 않았다고 한다.

인생은 양파라는 은유는 살라미와도 연결될 수 있다. 살라미의 좋은 맛을 살린다면, 어렵고 힘든 일은 조금씩 잘라 하면 보다 쉽게 해낼 수 있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정성껏 끈기 있게 하다 보면 중요한 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살라미기술 살라미전술 이말라스, 회기 쪼개기(살라미) 등은 모두 부정적 뜻이 강하다. 나는 살라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모른 체 하는 사이에, 살라미를 자른 칼이 내 목을 겨냥할 날이 온다는 것은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돼 오고 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며 후회해도 때는 늦을 것이다. 강 건너 불은 팔짱 끼고 구경하는 게 아니라, 소매 걷어붙이고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행동해야 뉘우침 없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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