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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시와 경제 23 - 나쁜 엔低와 원화가치 하락의 정치경제학

가격경쟁력은 후진국, 품질경쟁력이 선진국의 조건

표범 삼둥이가 있다. 이름이 각각 대한, 민국, 만세다. 맏이 대한은 빠르게 달리는 게 특기다. 민국과 만세보다 훨씬 날쌔다. 하지만 무작정 앞으로만 내달리는 게 단점이다. 미로를 빠져나가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무리를 이끌려면 지혜가 필요한데 오로지 전진만 고집하는 대한은 우두머리 경쟁에서 뒤쳐진다.

막내 만세는 다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달리기보다는 생각을 한다. 사냥감이 도망가는 뒤를 무턱대고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름길에서 기다리다 급습해서 사냥에 성공한다. 미로에서도 맏형 대한보다 훨씬 빠르게 길을 찾아 출구로 나간다. 달리는 능력은 좀 뒤지나 생각하는 힘이 좋아 우두머리로 인정되고 있다.

며칠 전 TV에서 방영된 ‘표범 삼둥이’를 보면서 ‘나쁜 엔저’와 ‘원화가치 하락의 정치경제학’을 생각해본다. 엔/달러 환율은 6월22일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36엔대까지 상승했다.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1985년 9월의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로 ‘Japan is No. 1’으로 불릴 정도로 잘 나갔던 일본의 치욕이라고 부를 엔화 추락이다.

 

 

 

아베노믹스의 저주/ 如心 홍찬선

 

신의 한 수라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잃어버린 20년을 30년으로 늘릴 것이라는

경고음은 애써 듣지 않았다

 

엄청나게 풀린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값도 상승해

정권 지지율이 급등하는 열기에만 사로잡힌 것,

 

정지신호와 브레이크가 없는 게 비극이었다

미국이 금융완화정책에서 금리인상으로 돌아섰는데

약발 떨어진 3개의 화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일본을 2류 국가로 뒷걸음질 치게 하는

나쁜 엔저의 저주로 부메랑이 되고 있다

 

* 3개의 화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이름을 딴 아베노빅스에서 핵심 정책으로 채택한 대담한 금융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공격적인 성장전략

 

통화가치는 한 나라 경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종합 체온계다. 체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체온이 올라가는 것처럼, 경쟁력이 떨어지면 환율이 올라간다(통화가치 하락).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 경제가 살아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입물가가 올라 소비자물가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부작용으로 여긴다. 한국경제가 1960년대 이후 거의 10년마다 달러당 200원 정도 떨어진 원화가치 덕분에 높은 성장을 지속해온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국제상품시장에서 저가격은 여전히 강력한 경쟁요소이기는 하지만, 결정적 요소는 가격이 아니라 품질이다. 품질에는 성능은 물론 디자인과 내구성 및 AS까지 포함된다. 특히 기업 대부분이 수요가 있는 나라에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을 하기 때문에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이런 환경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인 부양효과만을 겨냥했기 때문에 일본경제의 저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력경쟁/ 如心 홍찬선

 

여러분의 경쟁 상대는

동경(東京)대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몸의 반이 마비된 노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사뭇 비장한 어조로 다짐하듯 말했다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기는 것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1인당 3명씩 상대해서

그들을 제치는 게 유일한 길

 

3명은 고사하고 1명한테도 진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져

영원히 역전할 수 없다는

 

고 임원택 선생님의 가르침이

게으른 머리를 거세게 후려친다

 

싼 것으로 경쟁하려고 하면

인생도 저가품이 된다는 냉정한 현실 법칙의 회초리다

 

 

나쁜 엔저가 일본경제를 괴롭히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도 원화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지난 1월3일 달러당 1191.8원에서 3월31일 1212.1원으로 약 20원 올라(원화가치 하락)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34%포인트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 3.8%의 9%가량이 환율상승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환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오르기 시작해 지난 6월23일에는 12년 만에 1300원대를 돌파해 1301.8원에 마감됐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 5월에 5.4%까지 오른 데는 환율상승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한국의 경제 체력은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뒤, 아베 정부가 2019년 7월부터 감광액(포토레지시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3개 부품을 한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무역보복을 했지만, 한국 기업은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한국이 100개 품목에 대해 일본에 의존하는 비율은 2019년 30.9%에서 2021년에 24.9%로 낮아졌다. 그만큼 한국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일본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덕분이었다. 한국 기업이 더 이상 환율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에 의존하지 않고 품질로 경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선진국에 진입해 정착한 나라는 없다. 환율상승과 가격경쟁력이라는 쉬운 길로는 선진국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싼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경쟁력은 품질에서 나온다. 품질로 경쟁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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