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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한 게 가장 비범한 것이다.

항상(恒常)의 항( 恒 )은 매일 똑같이 뜨는 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블루, 레드, 화이트"

 

1994년 나온 프랑스 영화다. 자유(블루), 박애(레드), 평등(화이트)을 주제로 했다는 뭔가 철학적인 수수께끼 같은 영화였다.

 

사실 영화 내용을 보면서 왜 자유이고, 박애이며, 평등이 주제였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돼 내용도 잊었지만, 사색적인 도전을 던진 탓에 영화의 편린들이 아주 오래 남았다.

 

무엇보다 세 영화 중 백미는 첫 개봉된 블루다 싶다.

 

영화 전반적인 색감과 음악적 감성, 누가보다도 예술적이다 싶은 몽환이 서려있다.

 

특히 이지적인 줄리엣 비노슈의 고급 진 매력이 풀풀 넘친다. 동양의 우아함의 서구적 표현이다.

 

세 영화는 독특한 인생을 경험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각기의 주제를 풀어간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 인물들은 한 시대를 살아 한 영화 속에서 모두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

 

 

더욱 재미있는 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병을 버리는 노인’이다.

 

영화를 보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 딱 좋은 아주 짧은 순간에 등장한다. 안 그래도 작은데 허리가 굽어 더욱 작아 보이는 노인이 어렵게 손을 뻗어 병을 분리 수거통에 버린다. 정확히 버리기 위해 허리 굽은 노인은 한동안 애를 쓴다.

 

겨우 병이 버려지는 순간 장면은 바뀐다.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다. 기억에 세 영화에 매번 고르게 나온다.

 

사실 그래서 더욱 각인됐다. 주인공의 독특한 생에 대비되는 ‘행인 1’의 극적인 평범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 영화를 모두 관통하면서 같은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사실 노인이 할머니였는지, 할아버지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실 상관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누군가의 ‘행인 1’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은 바뀌어도 ‘행인 1’은 바뀌지 않는다.

 

 

무엇이 독특한 주인공들의 삶을 그린 영화의 줄거리는 잊도록 해도 ‘행인 1’의 짧은 장면은 각인되게 했을까?

 

그 무엇이 내 기억 속에서 평범함이 비범함을 뛰어넘도록 만들었을까?

 

세 영화에서 유일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아니면 병을 집어넣으려는 안타까운 모습에?

 

 

 

이 질문에 답은 엉뚱하게 한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주인공, 특이함을 뛰어넘는 평범함”은 한자 속에 나오는 최고 가치다. 이런 의미의 한자가 바로 항(恒)이다.

 

 

그리고 그 진정한 함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안다.

 

본래 항 자는 갑골문에는 없다. 즉 당대에는 항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의미다.

 

인류가 항 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다. 수렵을 지나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이뤄지고 나서의 일이다.

 

금문에 나오는 항 자는 마음 심(心)과 단(旦)의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단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 것은 본래 단이란 한자가 더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글자에도 많이 나타나고, 갑골문도 있다.

 

다음에서 보듯 해가 막 뜬 모습이다. 태양 아래 땅의 그림자까지 그대로 글자 속에 표시돼 있다.

 

마치 아침 여명의 노을 순간을 그대로 잡아낸 한 편의 스냅사진 같다.

 

 

항은 그 태양이 두 개의 기준 이(二) 안에 있다. 태양이 하늘과 땅으로 뜨고 지고, 그것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글자가 바로 항이다.

 

하늘의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사람이 마음으로 느낀다는 의미가 바로 항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는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무엇인가 분명 범상치 않은 뜻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항 자의 뜻은 정말 엉뚱하다.


"평범하다"라는 뜻이다. 아니 하늘의 태양이 평범하다니?"

 

‘항’이라 떼어놓고 보니 새롭지만, 사실 우리는 항이라는 한자를 입에 달고 산다. 역시 너무 평범하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러나 ‘항상’이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다. 심지어 “항상(恒常)이 한자였어?”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저 친구는 원래 그래”, “그게 원래 그래”, “그저 그래”, “항상 그래” 등이 그렇게 쓰는 말, 의미들이다.

좋은 뜻? 혹 나쁜 뜻?

 

사실 항상은 그런 의미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어릴수록 항상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보인다. 대표적인 말이 ‘그저 그래’라는 표현이다. 평범함에 대한 경시가 엿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항상’이 새롭게 중요해진다. “그 친구 본래 그래”, “그 친구 항상 그래서 좋아"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항상, 평범함이 비범함을 뛰어넘는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저 하늘의 태양은 수천 년, 수만 년을 그렇게 떠 위대한 것이다.

 

저 청산이 드높은 것은 수백 년 수천 년을 그리 서 지는 태양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저 산 절벽 푸른 소나무는 그렇게 수십,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디고 푸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평범함은 쌓이고 쌓여서 비범함을 뛰어넘는다.

 

삶이 유한한 인간은 특별하기를 바라지만 결국 평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비범한 것, 비상적인 게 오래가는 법이 없다.

 

그때 그 순간 통용될 뿐이다. 본래 오래가는 평범이 짧은 비범을 이기는 법이다. 본래 비범보다 어려운 게 평범한 것이다. 오래가는 것이다.

 

비범은커녕 평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 그 자체다.

 

시간이라는 게 무엇이던가? 먼저 우린 하늘 천(天)에서 시간을 배웠다.

 

하늘은 태양으로 하루의 시간을 보여준다. 하늘에 사람의 머리 위로 해가 뜨고 지는 게 하늘이다.

 

그러고 보면 글자 구성에서 항과 천은 대단히 닮았다.

 

큰 사람 위로 하늘에 해가 뜨는 게 하늘이고 저 땅 위에 뜨고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이 항이다.

 

태양은 그렇게 인류가 처음 하늘을 본 이래 항상 그렇게 뜨고 지지만, 그 태양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매번 새롭다.

도대체 우리는 몇 번의 해를 볼까?

 

저 청산은 도대체 몇 번의 노을을 겪었을까?

 

 

그래서 성인들은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고전이 진리는 한결같다.

 

어려운 것은 하늘의 도가 아니다.

 

특별한 것도 하늘의 도가 아니다.

 

선인들은 그래서 하늘의 도를 '항'(恒)이라고 했고, 사람의 도를 그 '항을 따르는', '항지'(恒之)라 했다.

 

다시 말하지만 "평범이 쌓여 비범을 이기는 것"이다. 비범은 본래 지속되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직 평범한 것들만이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노자는 “이름 없는 도가 진정한 도”라 했다. 공자는 “천도란 항상 그런 것”이라 했다. “진정한 예는 마음에 달렸다” 했다.

 

보니, 정말 사람은 평범하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이 너무나 짧다.

 

그러나 그래서 동시에 선인들의 고심을 이해할 듯싶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그 뜻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어져 천년을 가고 만년을 간다.

 

"君, 丹心垂千年"(그대여, 푸른 뜻이 천년, 만년 이어지기를!)

 

잠깐, 여기서 평범하다는 상(常)은 무엇일까?

 

나무에 걸린 천이라는 뜻이다.

 

역시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에서 보인다. 뭔가 중요한 것을 보호하는 천이다.

 

중국 글자 연구가들은 아랫도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의류 가운데 하의를 의미하는 상(裳)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사실 여기에는 상스러울 상(尙)이 있어 부분만 설명이 됐지 완전한 설명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어쨌든 그래도 글자의 의미는 상통한다.

 

가장 중요한 부위(?)를 가리는 성스러운 천을 가장 보통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전하는 진리는 같다. 가장 평범한 게 가장 비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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