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명상이 던지는 난센스 퀴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글자는 무엇일까?
"생각 사(思)다."
어렵다면 어렵고, 엉뚱하다면 엉뚱하다.
말 그대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각이란 게 본래 그렇다. 생각은 마음의 소리를 내기 전에 생기는 것들이다. 작은 물방울의 수를 세기 어렵듯 생각 역시 셀 수 없다.
작은 물방울이 그렇듯 홀연히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불현 듯 솟아난다.
생각이다.
생각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다.
고 신윤복 선생의 평이다.
생각은 이성적 머리와 감성적 가슴 사이를 채우는 것인데,
그 둘 사이 차이가 그리 넓고 크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 사(思) 본래의 뜻이 머리와 가슴이다.
생각이라는 한자는 금문도 없고 전서에서 등장을 한다. 전국시대 들어 생각이라는 한자가 만들어져 쓰였다는 의미다.
마음의 소리인 뜻 의(意)자 있어, 생각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 뒤 마음의 소리가 의지의 뜻으로 쓰이면서 다른 마음의 잡음들을 뜻하는 한자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해를 사지 않으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다. 필자는 학자가 아니어서 학문적 검증을 통해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자료를 통해 얻은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이글을 쓴다.
전서에서 생각 사는 마음 심(心)에 밭 전(田)이 있는 모습이다.
농으로, 생각이란 게 “마음이 콩 밭에 있는 것”이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밭 전 모양의 글자는 밭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전서체에서는 그 차이가 분명히 보인다. 갓 태어났을 때 아직 머리 위에 열려있는 대천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본다.
신윤복 선생의 말처럼 생각은 심장과 대천문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성적 머리와 감성적 가슴을 이어주는 게 바로 생각인 것이다.
그 둘 사이에서 뜻이 생기고, 그 뜻이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뜻이 되지 못한 우주의 먼지만큼 많은 수많은 상념과 상념들이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상념들은 때론 천금보다 무겁고, 때론 깃털처럼 가볍다. 때론 숨을 쉬기조차 어렵게 착절(錯節)하고 때론 폭우 속의 계곡물처럼 흉용(洶湧)하다.
또 때론 봄 햇살처럼 포근하고, 때론 여름 바람처럼 노근하다.
때론 이백의 정야사(靜夜思) 속 달빛처럼,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머리 들어 달빛보고)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머리 숙여 고향 생각)”
외로운 이의 마음, 몸을, 방을, 천지를 적지며,
때론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 속 비익조처럼,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 비익조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 되어)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 땅 다 없어져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우리 사랑 변치 않으리)”
가슴을 헤집고 날아다닌다.
생각은 그리 넓고 깊은 곳에서 나온다.
뜻도 기억도 그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