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오는 봄을 한발 앞서 맞으러 남쪽으로 훌쩍 ‘매화여행’을 떠났다. 성급한 마음에 때를 맞추지 못해 일찍 핀 홍매화 한 두 송이로 아쉬움을 달래며, 채석강(彩石江)으로 향했다. 토요일 아침이라 오가는 자동차도 뜸한 길옆에서 밤, 호박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차창으로 지나친 황토밭에 끌려 차를 세우고 호박고구마 한 상자를 샀다. 가격은 3만원. 내심 밤고구마를 사려고 했으나 호박고구마는 많고 밤고구마는 한 상자밖에 없었다. 마침 주인아저씨가 마수걸이라며 주먹 크기의 밤고구마 3개를 덤으로 넣어주었다. 기분 좋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채석강과 내소사를 돌아봤다. 저녁 때 집에 와서 설레며 고구마를 쪄보니. 호박고구마는 정말 맛있었는데, 덤으로 받은 밤고구마 한쪽이 3분의 1 정도 썩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아저씨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역선택/ 如心 홍찬선 사람이 사람과 사귀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숨기는 게 없다고 오로지 진심과 진실만으로 대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고장이 잦은 자동차를 번지르르하게 꾸며 중고차시장에 내놓는 것과 몸이 여기저기 아픈데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경제는 관계다. 생산자와 소비자, 개인과 기업과 정부, 국가와 국가 등 여러 주체가 여러 관계를 맺는 활동을 중심으로 경제가 벌어진다. 국가와 국제단체는 경제주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해치는 주체를 제재한다. 각 주체도 공정한 시장이 만들어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각 주체는 공동체를 만드는 요소이므로, 공동체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내 권리를 빼앗아 가려는 음모를 억제할 수 있다. 자위와 약탈/ 如心 홍찬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은 법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와 내 것을 스스로 지키는 것은 자위(自衛) 남과 남의 것을 부당하게 갖는 것은 약탈(掠奪) 날 때부터 평등한 인권을 가진 사람은 주인으로서 자위권을 가지며 아무런 합당한 근거 없이 남의 것 빼앗는 놈은 바람직한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암 덩어리! 올바른 법으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아름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축제인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각 국가들은 스스로의 경쟁시스템을
옛날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길렀다. 어느 날 그는 원숭이들에게 하루에 줄 바나나 7개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저공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는 어떠냐고 했다. 원숭이들은 좋다며 받아들였다. 살면서 한 두 번씩은 들어본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의 기원이다. 조삼모사는 처음엔 원숭이들이 멍청하다는 뜻으로 쓰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전용되고 있다. 과연 원숭이들은 멍청했던 것일까…. 조삼모사/ 如心 홍찬선 내 머리로만 보면 옳은 것도 틀린 것으로 여기고 내 생각으로만 들으면 잘못된 것도 올바르다고 착각한다 바나나를 아침 4개, 저녁 3개 받는 게, 아침 3개, 저녁 4개 보다 나은 것은 숲 속에 있는 참새 10마리가 내 손안에 있는 한 마리 보다 못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똑똑하다며 콧대 세우는 비심(非心)들은 원숭이를 향한 손가락질이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걸 내가 옳다고 우기면 틀리고 내가 틀리다며 묻고 찾으면 옳은 길 얻는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다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물론이고, 오늘 저녁이나 바로 10분 뒤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않으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역설(逆說, paradox)에 대한 국어사전의 설명이다. 설명이 더 어려운 듯하다. 단순화해서 쉽게 말하면, 좋은 뜻으로 어떤 일을 했을 때 뜻하지 않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아껴 쓰고 저축하는 것이 개인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인데, 모든 사람이 다 저축을 많이 하면 소비가 줄어 경제상황이 나빠지는 결과가 가져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바로 ‘저축의 역설’이다. 정부가 ‘1월 추경’을 마련했다. 1월 추경은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이후 71년 만에 처음이다. 사실상 역사상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0번째이며, 3년 연속 1분기 추경이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코로나와 싸우는 게 총칼 든 전쟁보다 힘들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1월 추경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따라붙는다. 추경의 역설/ 如心 홍찬선 경제
빚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웃는 선물의 얼굴과 모진 야차(夜叉)의 모습을 갖고 있다. 약간 무리를 하더라도 대출 받아 내 집을 마련하거나 좋은 주식을 사면 대출이자 보다 높은 수익으로 웃음을 안겨준다. 반면 힘에 부치는 과다한 부채는 자유를 빼앗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심하면 삶까지 망가뜨리는 저주를 초래한다. 착한 얼굴의 유혹에 빠져 야차의 모습을 잊으면 빚의 노예가 되고 만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의 늪에 빠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 빚/ 如心 홍찬선 빚은 냉혹한 야누스 좋은 빚은 웃음을 선물하고 나쁜 빚은 야차의 저주를 퍼붓는다 빚은 자유와 노예의 담장을 걷고 빚은 가족행복과 가정파괴의 줄다리기를 하다 빚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다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것은 철부지 사랑, 네 잎 클로버로 행복을 짓밟지 마라 빚은 현실이고 이익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어음, 빚의 노예가 되지 말고 빚의 주인이 되어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빚에서 벗어나라 빚이 삶을 살찌우는 선물이 될지, 아니면 자유를 빼앗고 가정을 파괴하며, 경우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야차일지는, 나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나의 현재 소득과 앞으로 예상되는 소득으로 대출이자를
43541122/ 如心 홍찬선 막걸리가 시간을 마셨다 소주는 사람을 집어 삼켰고 소폭이 대뇌를 찢어놓았다 알코올에 젖은 이성은 브레이크가 풀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이브의 타락으로 달려가려고 한 순간 벼랑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건져 올린 최후의 보루는 습관의 근력과 그분의 채찍이었다 서울특별詩를 줍던 발이 폭파당한 머리를 안전지대로 옮겼고 소리 없이 스며든 어둠이 부끄러움을 푸근히 감쌌다 저녁 5시부터 자정까지 흐드러진 술판은 배움터가 되었고 깨어진 머리는 스승이 되었다 욕심은 찝찝한 뒤끝을 남긴다고 잃은 것은 돈과 시간만이 아니라고 태양 아래 공짜는 없으며 선택은 스스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려주었다 * 기회비용 ; 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기회비용이라는 괴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지만, 기회비용이란 괴물은 삶의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우리들의 뒤통수를 세게 친다. 대부분은 맞은 줄도 모를 정도로 약하지만, 가끔은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로 강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기도 한다. 기회비용이란 여러 가지 선택 대안이 있을 때, 시간과 능력의 제한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발생한다. 하루는 24시간이고,
경제는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경제고, 실제로 현명하게 경제생활을 하면서도 경제를 어렵게만 여긴다. 경제를 제대로 모르면서 경제전문가로 행세하는 헛똑똑이 경제학자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경제보다 더 멀게 느낀다. 하루하루의 삶이 시 아닌 게 없는데도 시는 유명한 시인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뒤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찬선 시인이, 늘 우리와 함께 하는 시와 경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편집자> 은마아파트에 가면 - 여심(如心) 홍찬선 은마아파트에 가면 삶의 기준이 흔들린다 가치와 가격이 화성과 금성보다 더 어긋나 있는 곳 낡은 수도관에선 녹물이 울화통으로 솟구치고 넓은 주차장엔 겹겹이 대도 빈 공간 찾기 힘든데 공간의 희소성이 가치를 가격의 노예로 만드는 곳 헛배만 부풀리는 화폐가 마시멜로 효과로 화장을 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옭아매는 곳 욕망이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참다움이란 여유와 푸근함을 이죽거리며 짓밟고 미소 짓는 곳 은마아파트 앞에 서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느낌표가 왜 이렇게 견뎌야 하는지 물음표로 바뀐다 삶의 기준이 봄바람 닮아 흔들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