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저 뭇 산 내 한 번 굽어보리라!” 산에 올라 떠오는 해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가 산을 품는가 산이 해를 품는가 가슴이 밝아오는 하늘의 구름처럼 쿵쾅쿵쾅 뛰어오르면 나도 모르게 호기롭게 외친다. “나도 할 수 있다. 끝까지 버텨서 저 높은 곳에서 뭇 산을 한 번 굽어 보리라!” 두보의 시다. 두보는 이백과 함께 시성으로 불리는 당 시인이다. 이백이 순수한 천재성에 우러나는 재치를 보였다면, 두보는 인간적 고심 끝에 나온 짙은 고뇌가 보인다. 두 시인은 삶의 궤적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이백이 금수저로서 평생을 아쉬운 게 없이 호방하게 살았다면 두보는 평생을 남의 눈치를 보며, 호방한 자유를 그리며 살아 했다. 하지만 두보의 천재성을 무시하는 이는 없다. 이백이나 두보나 그 전에도 없고, 이후에 없는 시의 거봉들이다. 망악은 두보의 시 가운데 호기를 보이는 몇 안 되는 시 중 하나다. 시상은 다음과 같이 흐른다. 높은 산봉우리 겨우 올라보니 그 푸르름이 남과 북으로 끝이 없구나. 이 봉우리 저 봉우리 가파른 절벽마다 새겨진 기암절수(奇巖絶樹) 신의 손길 느껴진다. 아 저 멀리 어둠을 뚫는 한 줄기 빛 층층구름처럼 내 가슴도 벅
“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술 잔 들어 달 부르니, 그림자까지 셋이 됐네” 요정의 나라는 어린이 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순수한 사람라면 누구에게든 있다. 요정을 부르는 마법도 동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 술 한 잔은 요정의 세계로 가는 마법이 된다. 이백의 시다. 가장 유명한 시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이는 없다는 시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다. ‘달 빛 아래 혼술’이다. 혼자 마시는 술이다. 본래 동양에선 ‘독작’(獨酌)이라 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외로워 마시는 술이다. 처량한 술이다. 혼자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추태를 부리기 일쑤다. 그래서 외로워 마시는 술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이런 외로움을 시인 이백은 요정의 시공 속으로 가는 마법으로 풀어낸다. 소개한 구절은 바로 꽃밭이 요정의 마법 세계로 변하는 주문이다. 술잔을 들어 달에게 이 주문을 외우면 달의 요정이 화답을 하고, 그림자가 살아 움직인다. 다시 이백의 월하독작이 살아 움직인다. “꽃 속에 따른 한잔 술 홀로면 어떠랴, 저 달, 내 그림자 있는데 술 잔 들어 달 서생과 건배하고 술 잔 내려 그림자와 건배하
“春风不相识, 何事入罗帏?” (춘풍부상식, 하사입라위)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 애꿎은 치마 끝만 들추네. 시성 이백(701~762)의 춘사다. 이백은 누구라 말할 것 없는 천재 시인이다. 1300여년 전 당나라 시인이지만, 지금 읽어도 시의와 시정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요동치게 한다. 그의 시어(詩語)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 속에 있지만, 그의 시율은 시대를 넘어 천고를 관통해 면면히 이어진다. 동서양, 그의 시처럼 때론 호방하고 때론 애처롭고 때론 정욕에 싸인 듯 때론 백합처럼 간결하고, 깨끗한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시를 본 적이 없다. 춘사(春思)는 말 그대로 ‘봄의 생각’이다. 봄에 드는 그리움이다. 하지만 겨우내 가슴 속 깊숙이 농 익어온 마음의 정, 심정(心情)이다. 본래 그리움이 짙어지면 애달프다. 애달프다는 건 마음만 아픈 게 아니다. 몸도 아픈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그려, 그리다 못해 그대 오는 날 그만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고통, 애달픔이다. 춘사는 이 애달픔을 너무 간결하게 너무도 새침하게 너무도 요염하게 그렸다. 그래서 일견 소녀의 방심(芳心)같고 탕부의 음심(淫心)같으며, 때론 열부(烈婦)의 결의(
‘취해 잊은 시간 너도 나도 웃고‘ “我醉君复乐,陶然共忘机。”(아취군복락, 도연공망기) “취한 그대에 건넨 한 잔 그댄 환희 웃고 우린 어느새 시간마저 잊었다네.” 시성 이백(李白:701~762)의 시다. 가장 흥했던 당이 망조가 들기 시작한 시기의 인물이다. 한문학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시인이다. 일찍이 중국 천하를 유람하며 곳곳에 명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쉽고 간결하며 호방하면서도 때론 간절하다 못해 애절한 시구를 남겼다. 한 수 한 수가 사람의 심결을 따라 스며든다. 소개한 시는 ‘下终南山过斛斯山人宿置酒’(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다. 제목 그대로 ‘종남산 아래를 지나다 은거해 사는 친구 집에 들려 술을 마신다’는 내용이다. 석양 산길을 지나 친구를 만나는 묘한 기대가 풍경 묘사에 담겼다. 그리고 만난 친구와 나눈 주담(酒談) 낙엽 소리에도 웃는 소녀만 같다. 이제 시의(詩意)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긴 여름밤이다. 산기슭 친구를 찾아가 술 한 잔을 나눌까, 길을 나선다. 능선에 오르니 해가 진다. 길어지던 나뭇가지 그림자 어느새 달 빛 그림자로 바뀌어 간다. 발걸음 총총 재촉하니, 달빛도 졸졸 따라온다. 어느만큼 왔나, 돌아보니,
인동(忍冬)의 마음, 세한심(歲寒心)이다. 푸르려는 마음, 겨울을 세는 마음이다. 겨울나기가 힘든 건 지루하기 때문이다. 밖에는 온 통 추위 뿐, 꽃도 나무도 변화가 없다. 방에서 이 지루한 겨울을 나야한다. 묘한 게 지루함과 싸움이다. 지루함은 이기려 하면 할수록 지치고 지루함에 지고 만다. 이 지루함을 지나야 봄을 맞을 수 있는데 …. 봄의 꽃을, 풀잎의 푸름을 즐길 수 있는데 …. 지루함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잊는 것이다. 뭔가를 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수를 세를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선 예로부터 겨울이면, 붓으로 굵은 나무 가지를 그려, 그 위에 하루에 하나씩 1000개 나뭇잎을 그려 넣으며 1000일, 3개월여의 겨울을 셌다. 겨울을 세는 마음이 바로 세한심(歲寒心)이다. 봄의 푸름을 기다리는 마음, 누구나 고대하고 기다리는 변치 않는 마음이다.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하는 그런 마음이다. “江南有丹橘 经冬犹绿林(강남유단귤, 경동유록림) 岂伊地气暖 自有岁寒心(기이지기난, 자유세한심)” 강남 단귤 나무 봄 맞아 푸른데. 그 어찌 봄기운만의 덕이랴, 겨울 센 변치 않는 의지 때문이지. 역시 장구령(張九齡, 673~740)이다. 감우십이수(感遇十二首
외로움은 홀로 있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문득 누군가 그리울 때 그 누군가가 몹시도 보고플 때 그 보고픈 이를 볼 수 없을 때 그 때 외로움은 검푸른 바다 밀물처럼 온 몸을 젖시어 온다. 그리움이 일상이 되면, 외로움도 일상이 된다. 일상이 된 외로움은 약도 없다. 그리운 이도 아직 나를 그리워한다는 믿음만이 외로움이 일상이 된 이를 버티게 할뿐이다. 그렇게 나온 싯구다. “持此谢高鸟,因之传远情。”(지차사고조, 인지전원정) “고마운 새야, 이 마음 전해다오” 당시인 장구령의 감우4수 중 3수다.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 짙은 그리움이, 외로움이 묻어난다. 시정은 이렇다. 골목길 홀로 걸어 집에 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니, 저 높이 나는 새 “고마운 새야, 이 마음 전해주렴” 마치 저 노을이 내 마음과 같다. 누가 있어, 이 마음 알아나 줄까?
“들에 핀 이름 없는 꽃이라고 어찌 자존심마저 없으랴.” 홀로 들녘에 핀 꽃에게 이 보다 더 강한 말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어떤 힘도 강한 바람도 잡초를 누이기는 해도 잡초를 꺾을수는 없다. 바로 잡초의 의지, 들녘에 핀 이름 모를 잡초의 마음 한 구석 녹지 않는 얼음 한 조각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면 혼자지 어찌 미인의 손길을 기다릴 것인가.” “草木有本心,何求美人折!”(초목유본심, 하구미인절!) 당의 시인 장구령의 감우 4수 중 제 2수다. 자연 속에 만물을 아름답게 풍성하게 만드는 참 진리를 따르는 선비가 무엇이 아쉬워 세간의 인정을 황제의 선택을 기다릴 것인가. 바로 당의 선비, 장구령의 일갈이다. 사실 시가 그린 풍경이 너무도 예쁘고 아름다워 일갈이라 하기 힘들다. 시는 봄과 가을을 대표하는 이름 난 풀 나무에서 시작한다. 봄 바람 하늘거리는 난초잎새 풍성하고, “兰叶春葳蕤”(난엽춘위유) 가을 날 달 밝은 밤엔 계수나무 무성하니, “桂华秋皎洁”(규화추교결) 이 충일의 생명들 온 세상 가득히 계절 계절 아름답고 아름답구나 “欣欣此生意,自尔为佳节”(흔흔차생의, 자이위가절) “이 숲엔 누가 살까?” 봄 숲에 가을 풀에 묻는다. “谁知林栖者”(수지임서자
“美服患人指,高明逼神恶.” (미복환인지, 고명비신악) “비싼 옷은 질시를 사고, 잘난 척은 미음을 산다.” 물이 모든 웅덩이를 채우고 그제야 다시 흐르듯 물이 남의 더러움을 씻고 자신이 더러워진 채 다시 흐르듯 물이 낮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닥을 채워 깊이를 알 수 없게 높아지듯 우리는 그리 물처럼 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나만은 기억하길... “美服患人指,高明逼神恶.” (미복환인지, 고명비신악) 굳이 왜 잘나야 하는지.
"草木本有心,何求美人折。" (초목본유심, 하구미인절) "잡초라고 원하는 게 없을까? 어찌 굳이 미인만 기다릴까?" 장구령의 감우 1수다. 감우는 느낌 감, 만날 우를 합친 단어다. 감성을 만나다로 읽어도 좋고, 만나 느낀 감성이라 해도 좋다. 둘 다 시인의 시의에 부합한다. 소개한 싯구는 당 시인 장구령의 감우 1수 가운데 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은 생활 속에 만난 작은 사물을 보며 느낀 자신의 감성을 엮어서 시로 만들었다. 당시 300수의 수작 중 수작이다. 장구령(張九齡, 678년 - 740년)은 중국 광둥성 소주 출신으로 중국 당나라 중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다. 당 현종 치세에서 정치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큰 업적을 쌓았다. 오늘날 총리격인 중서령을 역임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蘭葉春葳蕤,桂華秋皎潔。" (난엽춘위유, 규화추교결) "난초 잎은 봄에 풍성하고 계화 꽃은 가을에 맑은 법" 봄의 아름다움과 가을의 수려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시는 시작한다. 봄과 가을은 흔히 한 해다. 한 해 계절을 보라, 어느 한 계절 아름답지 않은 날이 있던가? 시인 장구령은 위의 말을 이렇게 썼다. "欣欣此生意,自爾爲佳節。" (흔흔차생의, 자이위가절) "모두가 무럭
“电影江前落,雷声峡外长。霁云无处所,台馆晓苍苍。” (전영강전락, 뇌성협외장, 제운무처소, 태관소창창) “강 앞 친 벼락, 우레는 협곡을 뒤흔들고 갑자기 구름 걷히니 산 위 정자 뒤로 창창히 갠 맑은 하늘” 비온 뒤 하늘이 가장 맑습니다. 짙은 먹구름,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 강 위로 벼락이 치고 저 멀리 협곡을 뒤흔드는 우렛소리가 강가까지 들립니다. 그런데 역시 갑자기 비는 그치고 구름이 갠 맑은 하늘이 산 위 정자 뒤로 창창히 펼쳐집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심전기(沈佺期, 656~714)의 '무산(巫山)'이라는 오언율시의 한 구절입니다. 심전기의 자는 운경(雲卿), 허난성 상저우(相州) 네이황(內黃) 사람으로 측천무후 시대 송지문과 함께 궁정시인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긴 불황 끝에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기만 합니다. 대기업은 그나마 돈을 벌지만, 소상공인들의 상가에는 대출 이자를 걱정하는 한숨이 무산의 우렛소리처럼 시장 골목 밖에서도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무종우(無終雨, 그치지 않는 비가 없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비는 반드시 그치고, 먹구름은 흩어지게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