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배우 기근 현상은 영화, 공연, 드라마 관계자들의 오랜 고민거리이다.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성 캐릭터가 원톱 주연이 되기 어렵고, 또 흥행을 위해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인기 아이돌 멤버 등이 투입되면서 여배우가 설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뛰어난 실력, 망가짐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으로 ‘신흥 로코퀸’ 자리에 오른 두 여배우를 동시에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백진희와 채수빈이 그 주인공이다.
백진희는 그간 출연했던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찌질한’ 취업 준비생 역할을, <트라이앵글>에서는 캔디걸 역할을 맡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외모와 딱 맞는 역할이었다. 반면 <기황후>에서는 전혀 다른 타나실리 역할을 맡아 호평을 얻었다. 표독스러운 악녀 역할도 소화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연기경력을 살려 KBS 월화극 <저글러스>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다짜고짜 물 따귀를 맞고, 옷 덜미가 잡힌 채 밖으로 끌려가며 머리채까지 잡히며 확실하게 망가지고 있다. 직장 상사의 과도하게 불합리한 요구에 거친 욕설을 포함한 ‘사이다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러브라인을 구축할 때는 연애초보의 순수한 설렘과 간질간질한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며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런 백진희의 활약은 데뷔 초 작품인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에서의 코믹 연기를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굉장히 오버스러운 민폐형 캐릭터로 전락하기 쉬운 역할을 코믹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만든 것을 보면 그녀의 내공을 짐작해볼 수 있다.
월, 화요일에 백진희가 있다면 수, 목요일에는 채수빈이 있다. 채수빈은 MBC 수목극 <로봇이 아니야>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것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채수빈은 KBS <구르미 그린 달빛>,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등 다수의 작품에서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고수해왔다. 최근 방영한 KBS 단막극 <우리가 계절이라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로봇이 아니야>에서는 제 나이에 꼭 맞는 상큼 발랄함을 뽐내며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봇이 아니야>에서 채수빈은 안드로이드 로봇 ‘아지3’을 대신해 로봇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조지아 역할을 맡았다. 작품 시작 전에는 ‘예쁜’ 여자 배우가 코믹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는 기우였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 아픈 배를 부여잡고 발끝을 동동 구르거나 새치기하는 상대에게 거친 욕을 내뱉는 등 디테일을 살린 코믹 연기가 돋보였다. 이에 <로봇이 아니야> 제작진은 "채수빈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노력형 천재다. 작은 표정과 손짓 발짓 등 뭐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다. 드라마의 마스코트로 작품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존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배우는 작품을 위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예쁜 여배우’ 이미지는 괘념치 않으며 코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여배우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위해 열정적으로 연기할 때임을 증명했다. 망가져도 예쁜 신흥 로코퀸들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