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한 게 정(情)이다.
미움이라 알았는데,
마음 깊이 남은 게
사랑이라 알았는데,
열정 끝에 남은 게
바로 정(情)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처럼
마음의 바닥에
농축되고 응집돼
내 마음의 끝에 남은 게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게
바로 정(情)이다.
정(情)이란 게 그렇다.
그래서
“사랑해”
보다 깊고,
“미워해”
보다 애틋하다.
그래서
“사랑해”를
“미워해”와
같은 뜻으로 만들기도 한다.
정이란 게 그렇다.
사랑과 미움이 오랜 교차로
농축된 감성이다.
푸른 마음이다.
맑은 마음이다.
마음, 심(心)이 푸른(靑) 게
바로 정(情)이다.
마음, 심이 맑은 게
바로 정이다.
푸른 마음, 맑은 마음이
바로 정이다.
복잡한 개념이라
갑골문엔 없고
금문도 금문 대전에서 나온다.
푸른 나무를 비추는 우물 옆의 마음이다.
마음이 나무와 같이
맑은 우물에 비취는 게 정이다.
정은 사랑과 미움,
그 극한 두 감정의 정화요,
그 극한 두 감정을 세월로
농축한 진액이다.
그래서
사랑보다 애틋한 게
다정(多情)이요,
미움보다 무서운 게
무정(無情)이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정이고
미움의 반대가 사랑이 아니라
다정이다.
이별이 그리 슬픈 건
사랑해서
미워해서가 아니다.
정이 많아
다정해서 슬픈 게다.
오랜 세월로 농축한
사랑과 미움이
정이 돼 슬픈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혈육과
생별을 하면,
항상 혀끝을 차며 그리고
사별을 하면,
소리를 삼켜 울게 되는 것이다.
“死别已吞声,生别常恻恻”
“사별이탄성, 생별상측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