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 걸 바래라.”
한자로 주어진 이상을 꿈꾸는 것을 기유(觊觎)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참 거시기하다. 시각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에서 대표적으로 이 기유가 나온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바랄 걸 바랄 일”인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옛날 중국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마님이 있었다. 대략 10명의 시녀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얼마나 인색한지 시녀들에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시녀들을 항상 고픈 배를 안고 일을 해야겠다.
하루는 맏언니 격인 시녀가 꾀를 냈다. 퍼포먼스를 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충성을 하며, 얼마나 배고픈지를 알리자고 했다.
그래서 하루는 시녀들이 아침에 서북쪽 하늘을 보고 일렬로 입을 벌리고 섰다.
마님이 그 것을 보고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가?”
맏언니 시녀가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마님. 다른 게 아니고 옛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서북풍을 마시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그래서 배가 부를 수 있다면 밥을 축내지 않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국 속담에 ‘서북풍을 먹다’는 말은 가난이 찌들었다는 의미다. 말 그래도 바람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서북풍은 북쪽에서 부는 한풍이다.
겨울철 배고품을 이기고 버틴다는 의미다. 하녀는 이 말에 따라 퍼포먼스를 하면서 우리가 그 정도로 빈한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항의한 것이다.
그러자 못된 마님이 답했다.
“아이고 너희들의 충성이 갸륵하다. 정말로 서북풍을 먹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니, 잘 연습해서 꼭 성공해라. 내 너희들의 충성에 감동해 지금하는 연습에 걸맞는 의복을 내리겠다. 모두 마른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주겠다. 걱정하지 말고 연습하도록 해라!”
그 말은 시녀들은 결국 연습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바랄 걸 바래라!’ 때론 바라지 말고 얻어내려는 행동이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