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노예에서 주인으로 민 民 2

시력을 잃은 노예, 백성 민은 노동이 무기였다. 점차 민은 직업을 가진 노동력을 의미하게 됐고, 귀족들은 민의 주인 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각하게 됐다. 그렇게 민은 조금씩 역사의 굴곡을 기어 나왔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학자들은 ‘민’이 백성이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을 주(周) 나라 때로 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그 의미가 확고해졌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주나라 이전의 풍속을 노래한 시경 소아(小雅)의 ‘어떤 풀이 시들지 않느냐(何草不黃)’라는 시에 "부역 간 장부들만 불쌍하네, 그들만 홀로 백성(民)이 아니란 말인가 (哀我征夫, 獨爲匪民:애아정부, 독위비민)"라고 노래했다. 즉 부역 간 장부가 ‘민’의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한탄한 것이다. 
노예가 아니라, 이제 대접을 받는 백성이 된 것이다. 정말 시력을 잃은 노예에서 상상도 못하던 변화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민의 의미는 아직 아니다. 이때만 해도 지금 흔히 쓰는 '민주'民主라는 말은 그 의미가 달랐다. 춘추전국시대 민주는 민이 주인됨이 아니라, 민의 주인 즉 군주를 의미했다.
주나라 이전 왕조 역사를 다룬 상서(尙書)에서 ‘민주’ 란 단어가 군주란 뜻이었고 그 뒤 수백 년이 지난 삼국지 오서(吳書)에서도 "신하가 군주를 따름에 있어 법에 의해야 한다(夫爲民主, 當以法率下:부위민주, 당이법솔하)"며 ‘민주’를 군주라는 의미로 썼다. 
민의 지위도 높아졌지만 그것은 군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춘추전국시대 왕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비였던 민을 자유화해 농사를 짓도록 해 사회 생산력을 높였다.
맹자에 이르러 ‘민’은 또 한번 직위가 격상된다. ‘역성혁명론’으로 임금(君)까지도 내몰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민을 귀하게 여기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은 가벼이 여긴다" 맹자, 진심 하에 나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은 여전히 주인이 아니다. 사실 여기에 우리 동양은 서양과 근본적 관념의 차이를 가지게 된다.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중국 '가오카오 소비' 새로운 소비 트랜드로 자리 잡아
"'가오카오 소비'를 잡아라!} 중국판 대입고사인 '가오카오'가 중국 유통업계의 새로운 소비 트랜드를 만들고 있다. 시험이 끝나고 백만이 넘는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며 억눌린 감정을 소비로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모 입장에서 고생한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소비를 지원하고 나서면서 중국에서는 '가오카오 소비'라는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CMG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올 2025년 중국 대학 입학시험이 막을 내리면서, 수험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춘 소비’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졸업 여행부터 전자기기 구매, 자격증 취득과 자기 관리까지, 대학입시 이후의 ‘보상 소비’와 ‘계획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소비형태는 여행부터 전자제품, 자기 계발까지 다양하다. 말 그대로 수험생들이 "이제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즐기기 위한 소비에 주머니를 아낌없이 열고 있다. 중구 매체들은 가오카오 시험이 끝난 직후, 졸업생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부모에게서 ‘보상 선물’로 최신 스마트기기를 받는 모습이 흔해졌다고 전했다. 일부는 여름방학을 활용해 운전면허를 취득하거나 헬스장에서 체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