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잘하는 이는 사람을 쓰지, 쓰임을 당하지 않는다.”
“故善戰者, 致人而不致于人”
(고선전자, 치인이부치우인)
전쟁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 자신의 군대를 수족처럼 부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해 적을 공격해야 한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조직원을 지휘해 경영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 쟁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손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짧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고로 전쟁에 잘하는 이는 사람을 쓴다. 사람에 의해 쓰이지는 않는다.”
사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관건은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전쟁에서 사람은 적도 있지만 나의 병도 있다.
손자는 병사를 이야기 할 때 병(兵)이라 했지 사람 인(人)이라 하지 않았다.
손자는 내 편을 아(我)라 했고, 적을 적(敵)이라 했다. 이 문장에서 사람이라 한 것은 아군과 적군을 아울러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치는 가져다 바친다는 의미다. 치명(致命)은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다.
치인은 사람을 바친다는 의미가 된다. 치우인의 우(于)는 수동태의 의미다. 사람에 의해 바쳐진다는 의미다.
간단히 직역하면 “사람을 희생시키지, 사람에 희생되지 않는다. 고로 전쟁을 잘한다고 한다”가 된다.
중국어 현대번역에는 적을 움직이도록 조정(調)하지, 적에 의해 움직이도록 조정되지 않는다고 치(致)를 조(調)로 풀이했다. 좋은 풀이지만 아쉬운 게 사람을 적으로만 해석했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아군이다.
사실 적의 병을 희생물로 삼는 것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인류애에 입각해 적병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아군의 목숨을 희생하게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명분을 앞세우다 전쟁에 패하고 결국 나라까지 망하게 한 송나라 양공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질까.
하지만 전쟁은 그 이상이다. 적병의 목숨은 물론이고 우리 병의 희생도 필요할 때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부하들을 정말로 아낀다면 부하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지, 부하들의 희생이 아까워 우물쭈물하다 전쟁에 패하는 것이 아니다.
손자의 말에는 이 같은 의미도 포함돼 있다.
요즘 경영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승리요, 성공이다. 어쭙잖은 인의에 빠져 큰 일을 하지 못하면 더 큰 희생을 하게 된다.
“致人而不致于人” 마음에 새겨두면 반드시 그 쓰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