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어느 겨울 날, 5.16 이후 군인들이 강한 권력을 행사했을 때의 일이다. 서울행 통일호 열차가 영등포역을 지나 한강철교를 건널 때쯤이었다. 여인 한 명이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 앞에 앉아 있던 헌병장교의 머리를 내리쳤다. 헌병장교는 다행히 얼굴을 피했으나, 뾰쪽한 뒷굽으로 어깻죽지를 얻어맞고 벌떡 일어나 쌍욕을 하며 여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태세를 보였다.
일촉즉발의 이 때, 옆에 서 있던 중년 신시가 젊잖게 한마디 했다. 천안역에서 기차를 탄 이 신사는 승차 때부터 지금까지 헌병장교가 줄기차게 앞에 앉은 여인을 치근대던 모습을 지켜보며 화를 삭이고 있었던 터였다. “이봐요, 아까부터 보고 있었소. 여자들이 귀찮아하면 그만둬야지, 장교체면에 이 무슨 행패요…”
기세등등하던 헌병장교가 한풀 꺾이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고, 그 헌병장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주춤주춤 자리를 피했다. 신사의 말 한마디가 여인의 봉변을 막아주었고, 헌병장교의 잘못도 바로잡아주었다.(<저항과 은둔 시인 신동문>, 『월간 시』, 2022년 3월호, 193~198쪽)
무임승차/ 如心 홍찬선
훔친 사과가 맛있다고 합니다
무임승차가 달콤하다고 하네요
강 건너 불구경이 재미있답니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스개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독이
도사리고 있음은 알지 못할까요
양심을 썩게 만드는 게 훔친 사과요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게 무임승차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게 강 건너 불구경입니다
그래서 머슴은 무임승차를 즐기지만
그래서 주인은 절대로 무임승차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와 정책집행자를 괴롭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무임승차(Free Ride)다. 표를 끊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바로 무임승차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무임승차는 정상요금의 30배에 이르는 벌금을 물린다든지 해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무임승차는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올바른 인성교육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위에서 예로 든 열차 안에서의 치한 물리치기다. 치한이 있을 때 누군가가 나서 제지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봉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행동을 막고, 이런 두려움이 뻔뻔한 치한들이 활보하도록 만든다. 누군가 나서서 치한을 없애면 나는 공짜로 치한 없는 사회를 누릴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무임승차다. 국방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모두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키면 나는 군대 가지 않아도 외적의 침입에서 안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무임승차를 하려고 하면 결국 사회와 나라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주인/ 如心 홍찬선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주인은 도둑과 강도가 침입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것을
싸우다 목숨을 잃을지라도 비겁하게
생명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죽을 각오가 있어야 살 수 있고
죽어야 가족과 나라가 산다는 진리를
우크라이나는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사욕(邪慾)에 빠진 폭력은
올바른 정신을 이기지 못하고
불법적인 침략전쟁은
정의로운 방어전쟁에 반드시 패한다는 것을
한 마음 한 뜻으로
온 뫔으로 깨닫게 한*
21세기의 밝은 스승이었다
* 뫔: 몸과 맘(마음)을 합한 말
우크라이나 국민은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에 대해 무임승차 하는 대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싸우고 있다. 일부 국민들이 피난을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신혼부부가 총을 들고 시민군에 참여하는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군사적인 지원은 물론 경제적 및 심리적 지원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선택의 순간만 남겨 놓고 있다. 4일과 5일 사전투표를 하고, 9일이 정식투표일이다. 투표는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무임승차하지 않고 주인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권리이자 의무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양심에 따라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다. 선거 때 투표하지 않고 정치가 문제라고 핏대 높이는 것은 무임승차를 즐기는 머슴이나 하는 짓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총을 들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주인됨이 참으로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