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라.
구름이 보이는가? 해와 달은 보이는가?
다시 묻자.
보이는 하늘은
공간인가?
시간인가?
하늘에서 무엇을 보는가.
여기에 가장 근본적인 지혜가
삶의 근원적 질문과 답이
담겨져 있다.
수천 년 한자가 담아
전하는 선인의 지혜다.
다시 묻자.
하늘은
공간인가? 시간인가?
한자 천(天)은
공간인가? 시간인가?
이 질문의 답이
인류가 문명을
일구는 단초다.
그래서 하늘 천(天)은
일찍이 갑골자에 나온다.
묘한 게
하늘 천(天)은 하늘이 아니다.
모양을 본 뜬 상형자인데,
하늘을 본 뜬 게 아니라
사람을 본 떴다.
하늘 천(天)이 가르키는 건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늘을 보는 큰 사람이다.
큰 사람,
하늘을 보는 큰 사람이다.
더 정확히 하늘 천(天)은
하늘의 해가
큰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
동편에서 서편으로 가는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멈춘 공간이 아니라
움직이는 공간,
하늘이 담은 시간이다.
그래서 아직도 중국에선
천을 하늘 천이라 하지 않고
하루 천이라 한다.
하루를 담은 하늘
그게 진정한 하늘이다.
인류는 태어나면서 천을 봤다.
공간을 봤고,
그 공간의 변화를,
시간을 봤다.
최초의 인류는
하늘에서 해를 보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게 됐고
달을 보고
월을 알고
별을 보고
계절을 알았다.
한해를 알고
역(歷)을 알았다.
하늘은 공간이며
그 변화가 시간임을 안 것이다.
그렇게 갑골자 속의
큰 인간은
하늘을 보고
역사를 봤다.
수천년이 지나
기술의 시대를 사는
인류는
어느새 그 시간을
손목으로 가져와
매일 본다.
달력으로 가져와
매월을,
한해를
손쉽게 정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하늘 보기를 잊었고,
십년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설계 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가 진정한 하늘 천(天),
시간을 담은 하늘을 잊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