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그래서
목마른 자를 기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다스림이다.
세상이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집도, 명예도 아니다.
바로 물이다.
갈증을 풀어줄 물이다.
그게 진정한 다스림이다.
한자 그대로의 의미다.
다스릴 치(治)는 갑골자는 없다.
금문에서야 등장한다.
흐르는 물가에
사람이
입을 열고 기뻐하는 모습이다.
‘厶’는 ‘스’ 또는 ‘모우’라 읽는다.
갑골자 기호다.
본래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상징했다.
결혼해 부부만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훗날 공동체 농사를 지어서
개인이 갖는 몫이란 의미가 더해졌다.
화(禾)를 더해 사(私)가 됐다.
‘厶’는 개인, 개인의 이익
개인의 즐거움이란 뜻이다.
그 아래 있는 게 입 구(口)다.
만족의 입,
웃음의 입이다.
물 가 옆의 태(台)
역시 금문에 등장한다.
금문에서 의미는
위의 풀이처럼
기쁘다는 뜻이다.
목마른 자가 물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갑골문의 요순(堯舜) 시대만 해도
평등의 사회였는지 모른다.
임금은 봉사자였지,
군림자(君臨者)가 아니었다.
곳간지기가 귀족이 되고
그 귀족이 왕이 됐다.
왕들 사이에 황제가 나왔다.
하지만 백성은
여전히 백성이고
목마른 자다.
귀족이 되고
왕이 되고, 황제가 된 뒤
잊는 게
백성의 목마름이다.
넘치는 강물을
주기만 하면 되는데,
갈증을 풀어만
주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
목마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귀족이 된 이는
왕과 황제가 된 이는
그걸 모른다.
아니 잊었다.
목마르지 않고
가려운 곳을
누군가
긁어주는 탓이다.
그렇게 위정자는, 군림자는
백성의 목마름을 보지 못한다.
개인의 목마름을 알지 못한다.
다스림은 그래서
결국 분배다.
공익의 공평한 분배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고르게 물을 나눠주는 게
다스림의 시작이었다.
쓰촨 두장옌(都江堰)은
범람하는 물길을 바꿔
지역 농경지의 젖줄이 되도록 했다.
다스림이란 두장옌 같은 것이다.
범람하는 강물을
모두의 젖줄로 바꾸는 것,
위기를 모두의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찾아주는 것,
그래서 사회 속 개개인들이
만족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다스림의 도리다.
치(治)의 의미다.
*편집자 주> 두장옌
두장옌은 진나라 촉군이 태수 이빙과 그의 아들 이랑이 기원전 306~251년 사이 건설했다는 수리시설이다. 민강의 범람을 막고 쓰촨 농경지에 물을 대는 것인데, 이 수리시설은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민강 옆에 외강을 파고 이 외강의 옆구리에 다시 쓰촨으로 흐르는 지류를 판 것이 수리시설의 전부다. 지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내외강의 유속을 달리해 내강의 수위가 올라가고 유속이 빨라지면 강물이 외강으로 흐르게 된다. 강물이 늘어난 외강은 한 차례 내강의 불어나고 빨라진 강물의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외강 옆구리 지류를 통해 물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