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사람에게 “그저 살으라”라고만 한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누군가 저 강의 달을
처음 본 뒤
강물처럼 흘러간
수많은 인간들이
던진 질문이다.
‘인간, 너는 누구냐?’
‘인간, 나는 도대체 누구냐?’
또
강물처럼 흘러간
수많은 인간들이
수많은 답을 남겼다.
남긴 답이
런던 국립도서관 철학 서고를
전부 채우고도
남는다.
아직도 그 답을 하는 책이
교보문고에 등장을 한다.
답에 대한 해설서도,
답에 대한 평가서도
줄줄이 나왔다.
보다 정교한 답을 위해
질문도
‘인간의 사유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
등등으로 수없이 쪼개지고
나뉘어졌다.
그 답들도, 그 답에 대한 답들도
산을 이룬다.
사실 한자로 치면
사람 인(人)자보다 단순한 게 없다.
하나 일(一) 다음으로 쉽다.
둘 이(二)만큼 쉽다.
왼쪽, 오른쪽 단 두 획이면
인(人)자 하나가 써진다.
너무 쉬워서
수많은 서예가들을 곤란하게 한 게
바로
사람 인(人)자다.
예쁘게 쓰기 어렵고
크게 쓰기 어렵다.
잘 쓰기 어려운 것은
그 쉬운 글에
너무도 복잡한 사람 인(人)의 일생이 담긴 때문이다.
그래서
오른쪽 획은 인의 품(品)이요,
왼쪽 획은 인의 격(格)이라 했다.
일생일세, 평생을 살아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갑골문에서 사람은
허리 굽혀 일하는 모습이다.
몸을 숙여 벼를 수확하는 이가
바로 사람이다.
살고 싶은가, 노동을 하라!
한자, 사람 인(人)이 전하는
짧고 강한 메시지다.
그래서 사람은
일생일세, 한 삶이 고달픈건지 모른다.
그래서
오른쪽 회과
왼쪽의 획이
서로 어울려
사람 인(人)을 쓰듯
타고남 위인(爲人)과
갖춰감 주인(做人)이
어울려 사람의 품격
인품(人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타고난 것만이 아니라
삶 속에 다듬어가는 게
사람의 품격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 인(人)자는 크게 쓰기 어렵고
사람 인품은 크게 되고 어려운 게다.
그래서
사람은 매번 갈림길에서
갈등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을
인간(人間), 사람과 그 사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일생일세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고,
수많은 후회와 희망이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