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排场 [páichang]"
우리 말로 '웅장한 장면', '겉보기', '겉치레' 등으로 번역된다.
중국을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한 단어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그리 좋은 뜻으로 들리지 않는 단어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사구시'实事求是의 '실'实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허虚와 실实에서 허를 버리고 실 만을 옳다 보는 것은 어떤 점에선 큰 오류다.
허와 실은 서로 보충하는 것이지, 상반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는 멀리 있는 이익, 즉 '명리'名利고, 실은 눈앞에 이익, 즉 '실익'实利이다.
명리만 쫓으면 실속이 없고, 실익만 쫓으면 큰 이익을 놓치게 된다.
본래 허를 얻으면 실이 절로 오고, 실을 얻으면 허가 뒤따르게 된다.
이 이치를 일찍이 중시한 게 중국의 문화다. 군자는 항상 둘을 모두 추구한다. 아니 둘의 균형을 추구한다.
그게 중용의 이치다.
특히 일정 수준, 소위 "이만하면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싶으면 추구하게 되는 게 실보다는 허, 명리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반열에 들면, 그 이름만으로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이름을 걸고 너무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이치다.
이런 의미에서 예부터 중국에서는 '排场', 겉치레가 중요했다.
이제 먹고 살 만한 '샤오캉'小康 사회에 들어선 중국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게 바로 '排场'이 될 것이다.
그럼 어느 정도 '排场'이면 될까?
이게 우리 상상을 넘는 경우가 많다. 세계 모든 사람의 상상도 넘는 때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명나라 재상 장거정张居正(1525~1582)의 초대형 가마다.
시호가 문충文忠인 장거정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명나라 관료다.
대외적으로는 몽골 등 이민족의 침입을 막았고 대내적으로는 정치 개혁을 이루고 황허강의 대대적인 치수공사를 완성시켰다. 명대 최고의 관료라는 칭찬도 적지 않다.
내각의 최고 직위, 수보首辅였던 그가 1578년 만력万历(명나라 13대 신종 연호) 6년 4월 고향에 금의환향하던 모습이 기록에 남아 있다.
당시는 이미 장거정의 부친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던 시점이다. 늦었지만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이 행차가 황제도 부러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의장대는 물론이고 소총수까지 동원돼 장거정의 행차를 호위했다.
특히 장거정이 당시 탔던 가마는 그 규모에서 전무후무했다. 황인우黄仁宇의 만력십오년万历十五年에 기록으로 남아 후대까지 놀라게 할 정도다.
호화로운 것은 물론이고 그 크기가 놀라웠다. 내부가 사람 한 명이 앉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실이 있어 손님을 맞을 수 있고, 시동 두 명이 머물며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크기의 가마를 움직이려면 장정 32명이 힘을 합쳐야 했다고 전해진다.
32명이 함께 이 가마를 메고 어떻게 산을 넘고 강을 건넜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