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4월 16일 중국 공산당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항저우(杭州)에서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毛泽东)은 “우한(吴晗)의 문제는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하다"라는 발언을 통해 문화대혁명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다. 이 회의를 통해 문화대혁명은 중앙 무대에서 공식화됐고, 중국 전역으로 활활 타 들어갔다. 들불처럼 문화대혁명이 번졌지만, 아직 그 마화(魔火)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저우언라이(周恩来) 등 중난하이(中南海)의 지도자들을 알지 못했다.
1966년 4월 9일부터 12일까지 3차례 연이은 서기처 회의를 통해 이미 마오쩌둥의 '해서파관(海瑞罷官)' 비판에 대한 의도가 명확해졌다. 우한의 비판에 대한 비판이 문제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우한의 비판은 진정한 적을 불러내기 위한 유인책이었던 것이다.
이어 마오쩌둥은 1966년 4월 16일 항저우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연다. 이제 메신저 보이, 캉성(康生)이 아닌 마오가 직접 나선 것이다. 중국의 주인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의 선봉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회의에는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류샤오치(刘少奇), 덩샤오핑(邓小平), 예젠잉(叶剑英) 등이 참석했다.
"나는 단순히 우한만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누군가 우한에 동조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 물론이고 각 지방정부에도 있고, 군에도 있다. 곳곳에서 수정주의 현상이 나오고 있다. 문화계뿐이 아니다. 당정 군, 특히 당과 군에서 나오고 있다."
항저우 회의가 한창이던 22일 마오쩌둥이 회의에 참석해 한 발언이다.
마오쩌둥은 아울러 문화혁명소조도 구성원도 전면 교체한다. 펑전(彭真)이 맡았던 조장에는 천보다(陈伯达)가 임명이 됐다. 주요 조원에는 장칭(江青)이 참여했다. 회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저우언라이는 펑전을 3차례 불러 의견을 나눈다. 마오쩌둥은 28일, 29일 이어진 회의에서 펑전과 베이징시 당 위원회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한다.
이 같은 조치는 바로 중앙정치국으로 확대된다. 항저우 상무위원회 회의에 이어 베이징에서는 5월 4일부터 26일까지 중앙정치국확대회의가 열린다. 마오쩌둥 발언의 실천안을 만드는 회의였다. 회의에서는 펑전, 루이딩(陆定一),뤄루이칭(罗瑞卿),양상쿤(杨尚昆) 등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이때 저우언라이는 마침 회의에 제대로 참석을 하지 못한다. 알제리 공산당 대표단이 4월 28일 중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저우언라이는 이들과 함께 허베이(河北) 등지를 돌아본 뒤 5월 11일 연합성명을 발표한다. 저우언라이는 5월 5일 이 알제리 대표단과 함께 항저우의 마오쩌둥을 만난다. 이때 마오쩌둥은 알제리 대표단에게 묘한 말을 남긴다. 중국 공산당사에 '두 개의 가능'이라 불리는 발언이다.
"우리는 두 개의 가능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우선 반혁명이 있을 수 있죠. 혁명세력이 쫓겨나고 반혁명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래서 '죽순 뿌리를 벗기는 정책'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죽순 뿌리는 벗기기가 어렵다. 흔히 양파처럼 벗기고 벗겨서 속살을 얻는다. 여기서 죽순 뿌리 벗기기란 반혁명 세력에 대한 적출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적당한 시점에,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반혁명 세력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우언라이가 들은 이 모골송연한 마오쩌둥의 발언은 바로 그때 열리고 있던 베이징 정치국확대회의를 통해 구체화된다. 당 중앙은 마오쩌둥의 발언을 정리해 '통지'라는 제목으로 문서화한다. 그 발언은 다음과 같다.
반혁명 수정분자들이 당내, 정부내, 군대와 각종 문화계의 자산계급 대표 인물 가운데 섞여 숨어있다. 때가 되면 이들은 정권을 탈취하려 한다. 무산계급 독재를 자산계급 독재로 바꾸려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우리도 누군지 알고 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이들도 아직 있다. 특히 일부는 우리의 신임을 얻어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다. 마치 후르시초프 같은 수정주의자들이 우리 신변에 편히 잠을 자고 있다. 당내 모두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발언은 당 중앙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전 중국에 전파된다. 그러나 저우언라이도, 류샤오치도, 덩샤오핑도 여기서 말하는 수정주의를 감춘 채 신임을 받는 후계자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