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지도자 류샤오치9] 사면초가; 사방에서 울리는 “류샤오치 타도”
1967년 4월 1일 류샤오치에게는 ‘사면홍기’의 날이었다. 중국 전국 신문에 치번위가 쓴 ‘애국주의냐, 매국주의냐’라는 제목의 긴 장문의 평론이 게재된다. 내용은 청궁비사라는 영화 평론을 빗댄 류샤오치 비판 문장이었다. 문장은 류샤오치가 청궁비사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했다면서 류샤오치의 8대 죄악들을 열거했다. 류샤오치는 내용을 읽고 신문을 구겨서 바닥에 던진다. “아니 이 전부가 거짓말이다. 내가 언제 ‘청궁비사’ 영화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을 했다고 하다니, 이는 정말 무고다. 당내 투쟁이 언제부터 이렇게 하류에 머물렀던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용어는 내가 7차 전인대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다. 그 뒤 누구보다 마오쩌둥 사상의 확산에 기여해왔다. 이제와서 내가...” 류샤오치는 억울했다. “내 발언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나를 변호해야 한다. 당 중앙 간부가 변호를 해야 하고, 인민들이 변호를 해줘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내게 이 나라, 이 인민, 이 당의 공정한 몇마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류샤오치의 소망과 달랐다. 1967년 4월 6일 저녁 홍위병 조반파가 류샤오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