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탄생시킨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다.
덩샤오핑은 언제나 현장을 중시했다. "사무실에 앉아 보고를 받지만 말고 현장에 가 확인한 후 판단을 내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이를 몸소 실천해 보여줬다.
지난 1974년 4월의 일이다. 당시 덩샤오핑은 부총리로 재직하면서 중국을 대표해 유엔 총회 제6차 특별회의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뉴욕은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로 그 중심지는 당시에도 금융가 월스트리트였다.
반면 당시 중국은 1966년 시작된 극좌운동인 문화대혁명(1976년 종료)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 대표단의 눈에 월스트리트는 말 그대로 '역사적 반동'의 무대였다.
그런 반동의 중심지에서 중국 대표단은 모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빡빡한 회의 일정을 마치고 맞이한 휴일인 4월 13일(토요일), 덩샤오핑은 중국 대표단원들에게 월스트리트에 가보자는 제안을 한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 민감한 시기에 하필 반동의 중심지를 가다니? 그러나 덩샤오핑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월스트리트에 가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서방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역사도 짧은데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 우리는 잘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덩샤오핑의 주장에 모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덩샤오핑은 월스트리트를 둘러본 후 1970년대 핑퐁외교를 통해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미중 수교의 산파 역할을 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도 만남을 갖는 등 자본주의의 상징 뉴욕에서 개혁개방 정책의 씨앗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