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마지막은 너무도 초라했다. 누구 하나 왕조를 되살리려 하지 않았다. 자금성에 수많은 황족들과 내시, 궁녀들이 원하는 건 청 왕조의 재건이 아니라, 청 왕조가 200여년 이상 중국 천하를 지배하며 모아놓은 보물이었다.
얼마나 도적질이 심했는지,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결혼식 직후 황후가 썼던 봉황관의 진주, 비취 등의 보석들이 나중에 보니 진짜는 모두 사라지고, 가짜로 바뀌었다고 한다.
훗날 푸이는 “도둑이 아닌 이가 없었다. 모두가 기회만 있으면 훔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내시와 궁녀들은 몰래 훔쳤고, 황족과 대신들은 “물건을 살펴보겠다”고 가져가 되돌려 놓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황제 푸이마저 궁궐 내 물건을 훔쳐서 “동생에게 하사한다”는 명목으로 빼돌려 텐진 내 영국 조차지 내에 있는 사택에 따로 저장했다는 사실이다.
뭐 당시 군벌이라는 도적떼들이 언제든 들이 닥쳐 보물을 빼앗아갈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조치로도 보인다.
이 때 푸이는 장장 5개월간 각종 보물을 빼돌렸는데, 이 때 푸이가 빼돌린 보물 가운데는 왕희지 부자, 구양순, 조맹부, 미불 등 명가의 서예 작품들이 포함됐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보물들을 푸이는 필요 때마다 팔아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푸이는 자금성에서 나온 뒤에도 막대한 재산을 소유했는데, 땅 등 부동산에서 거둬들이는 월세와 외국 은행에 나오는 예금 이자까지 푸이는 황제시절보다 더 실질적인 부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텐진으로 하야한 푸이는 생활비만 대략 월 1만 5000위안을 지출했다고 한다. 머물고 있던 장원의 월세가 200위안, 집안 일을 돌보는 시종과 시녀들 월급이 약 4000위안, 정실 완롱과 원시우 생활비 1800위안, 식비 500위안, 차 100위안, 생활용품 구입비 4000위안, 전기료 200위안 등을 냈다고 한다.
여기에 푸이는 베이징 등 각지에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그 비용이 대략 월 1만 5000위안 가량이었다고 한다.
푸이는 가진 재산을 통해 이 같은 생활비와 활동비는 물론, 각지 군벌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복권의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 은밀히 들어간 돈은 대부분이 청나라 황실의 보물을 팔아서 마련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