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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지도자 류샤오치3] 의심의 싹은 순식간에 자란다

1962년 한 사건은 마오쩌둥의 마음에 류샤오치에 대한 의심의 싹을 키운다. 그 싹이 자라서 마오쩌둥의 한 때 ‘나의 친밀한 전우’였던 류사오치는 일순간에 ‘반동’, ‘배반자’로 내몰린다. 그 것은 돌이켜보면 류샤오치의 변치 않는 한 가지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바로 인민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실 정말 많은 초기 중국 공산당 멤버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미래 중국을 일으킬 사상은 ‘공산주의’여야 한다.

공산주의는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변증법적 역사발전에서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세상은 왕권과 교권의 싸움에서 귀족들과 연맹한 왕권이 교권을 눌렀고, 다시 왕권은 커져가는 귀족들의 권력을 젠틀맨, 소위 자본을 일궈낸 부르주아지 눌렀다.

부르주와의 자본은 사실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나오는 것인데, 노동자를 착취해 이익을 독식한 자본가들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세상, 공산혁명이 일궈내는 세상이었다.

서구 유럽의 발전에서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농민을 포함한 세력으로 변해 있었다. 산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중국에는 지주들의 착취를 당하는 농노와 소작농들이 있었고, 이들을 규합해 노동자와 농민이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중국 공산당 초기 멤버들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의 토대는 마오쩌둥이 제시했다. 소위 마오쩌둥 사상이다. 중국식 공산주의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사실 초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를 배워온 적지 않은 공산주당 멤버들 사이에는 사실 정통 공산주의가 아닌 변질된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이 정통 공산주의자들과 노선 투쟁을 해야 했는데, 중국의 현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류샤오치, 덩샤오핑 등의 지지를 받았다.

농민을 중심으로 한 혁명은 도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혁명과 달랐다. 실제 마오쩌둥 등 중국식 공산주의 혁명을 주창하던 이들은 국공 전쟁 당시 산속에 숨어서 지역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산적들처럼 숨어서 무장투쟁을 했다.

아직 설익은 중국 산업기틀 속에 적은 수의 노동자들을 계몽해 공산주의자로 만들려는 러시아식 노동운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마오쩌둥류의 공산혁명 투쟁은 국민당의 공세 속에 명맥을 유지한 것은 물론, 평화 시기 적지 않은 세력을 확산할 수 있었다.

어쨌든 청나라 말기, 국민당 시절의 중국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지주들의 착취로 지배계층에 대한 깊은 증오를 키우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둘의 색채가 분명히 달라지는 사건은 사실 1962년이 아니라 좀 더 오랜 역사가 있다.

바로 마오쩌둥이 공산혁명에 성공한 뒤 말 그대로 농민의 나라 중국을 노동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대약진 운동’이 그 것이다.

대약진 운동은 중국의 산업화를 위해 마오쩌둥이 추진한 운동이다. 철 생산을 늘리고, 이를 토대로 국가 자본을 축적해 국가 산업 발전을 이루자는 운동이었다. 좋은 생각이지만 정책은 생각만 좋아서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좋은 정책은 현실에 맞는 것이어야 했는데, 대약진 운동은 말 그대로 구호만 난무했고, 그 구호와 목표를 표면적이라도 달성하려는 중국 전통의 관료주의가 맞물리면서 중국 상황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철 생산량을 맞추려는 공산당 간부들의 독촉에 농민들은 가지고 있는 농기구를 녹여서 철을 만들었다. 농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흉년까지 이어졌고, 전국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마오쩌둥은 여전히 붉은 혁명을 생각했지만, 류샤오치의 대원칙은 인민 우선주의였다. 혁명에 성공했고,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을 통해 구현을 약속했던 부유한 생활에 대한 보장을 이제 정부가 해줘야 하는데, 부유한 생활은커녕 아예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류샤오치는 1961년 지역 시찰을 통해 이 같은 눈 뜨고는 보지 못 할 상황을 직접 보고 만다. 바로 1961년 제8차 9중전회에서 마오쩌둥이 간부들이 직접 대약진 운동이 제대로 잘 이뤄지고 있는지 보고 오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류샤오치는 고향인 후난 성 린샹현에 내려가 고향 농민들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듣는다.

논밭은 황량하기 이를 때 없었고, 농촌의 부녀자들은 때만 되면 숲에 들어가 나무껍질을 벗겨 땟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고향 농민들은 모두 먹지 못해 몸이 부어오르는 부종에 걸린 상태였다. 이 것은 류샤오치가 사무실에 앉아서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대약진 운동이 초래한 현실은 너무도 참혹했다.

“고향 촌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못했다. 중앙 정부의 잘못으로 이 많은 농민들이 이 참혹한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류샤오치가 남긴 기록이다. 류샤오치는 이어 1961년 5월 중국 당 중앙공작회의에서 류샤오치는 ‘대약진 운동’에 대해 “우리가 잘못했다. 농민들의 고통이 너무도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7월 이어진 정치국 회의에서 류샤오치는 ‘대약진 운동’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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