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쁨이나 분노의 크기는 모두 네 욕망의 크기에 비례한다.

 

‘총애를 받는다’는 게

무엇인가?

 

신뢰, 믿음을 얻는 것이다.

 

옛날엔 군왕에게

중용되는 것이요,

 

요즘엔 민심을 얻어

득표를 하는 것이다.

 

총애의 반대가 무엇인가?

총애를 잃는 것, 욕(辱)을 보는 것이다.

 

옛날엔 삭탈관직이요,

오늘엔 낙선, 파면파직이다.

 

총애는 얻으면 기쁘고

욕을 보면

분하고 슬프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렇다.

인지상정이다.

 

기쁘건 슬프건

분노가 치밀건

사실 이유는 모두 한 가지다.

 

자신(自身)의 욕망 탓이다.

 

잘 했다 평가 받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싶은

그런 욕망 때문이다.

 

총애를 얻거나 욕을 먹어서 받는

기쁨, 분노의 크기는

그런 자신의 욕망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다.

 

욕망이 없다면

어찌 기쁘고

어찌 슬플까?

어찌 분노하겠는가?

 

하지만

대업(大業)은 스스로

욕망(慾望)을 버리고

자신(自身)을 희생해

모든 걸 쏟아야

이루는 법이다.

 

그런 이가

어찌 총애를 얻었다고 기뻐만 하며

어찌 총애를 잃었다고 분노만 하랴.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그런 이가

나랏일을 해야만 하고,

그런 이에게

나랏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故贵以身为天下,若可寄天下;爱以身为天下,若可托天下”

(고귀이신위천하, 즉가기어천하, 애이신위천하, 내가이탁어천하)

 

“천하를 제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

라고 한 것이다.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중 드라마 막장형 늘어나며 사회 속에 여성혐오 싹 키워
동영상 홍수의 시대다. 현실을 보다 극적인 현실로 묘사하는 과거와 달리 최근 드라마는 극적인 비현실이 특징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불만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마약이 주는 환상과 다를 게 없다. 아쉽게도 이 쾌감은 역시 극적이어서, 쉽게 중독되고 만다. 더욱 문제는 이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착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비현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비현실적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는 현실 중국사회에 여성 혐오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드라마를 본 후, 우리 엄마는 주변에 악독한 며느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한 중국 매체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비현실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난성 난양시에 사는 리 씨는 어머니가 **《○○ 시어머니, 모두를 놀라게 하다》**라는 미니 드라마를 보고 나서 태도가 변했다고 밝혔다. 해당 드라마는 강인한 시어머니가 악독한 며느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를 본 후 어머니는 “그동안 며느리가 보였던 정상적인 태도는 다 연기였고, 악독한 며느리 주변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