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이 화제다. SPC삼립이 지난 2월24일, 20년 만에 새로 시장에 내놓은 포켓몬빵은 품절대란을 겪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소매점 앞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돗자리를 깔고 포켓몬빵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이른바 ‘오픈런’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19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MZ세대들이, 당시 유행했던 포켓몬빵 속에 들어 있는 ‘띠부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씰)을 수집하기 위해 포켓몬빵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 누리지 못했던 아련한 추억을 위해 포켓몬빵을 선호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빵 봉지 속에 들어 있는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빵은 먹지도 않은 채 그냥 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쓰레기통에 넣는 게 아니라 그냥 길거리에 버린다고 한다. 청소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은 물론, 음식물 폐기물 처리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먹고 입을 것이 없어 ‘장발장 형 경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포켓몬빵 통째로 버리기’는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마태효과/ 如心 홍찬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시여
동과 서, 남과 북이
서로 마주서 으르렁대지 않고
동남서북으로 손에 손 잡아
동그랗게 서서 서로 도와
하하 호호 웃으며 살도록 해 주시고
가진 자는 더 많이 갖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무정한 마태효과보다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곳에 보태고
모든 것을 고르게 나누어
함께 잘 사는 공자역설로
승자가 모든 걸 갖는
각박한 세상에서
손과 발, 입술과 이빨이 사이좋게 어울려
아픔은 나누고 기쁨은 함께 하는
따뜻한 누리가 되도록 살펴주시옵소서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29절에는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1969년에 이 구절을 인용해 <마태효과>란 말을 만들어 냈다. 과학적 연구업적은 실질적 기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이미 명성이 높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시카고 대학의 통계학 교수인 스티븐 스티글러는 이를 받아 ‘스티글러의 명명법칙’으로 재정립했다. 과학적 성과물에 대한 이름은 원래 발견자가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명성 있는 사람의 이름을 딴다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승자독식법칙’으로 정착됐다.
마태효과는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되는 현상이다. 공자는 주역과 논어 예기 등 곳곳에서 이와 다르게 부다익과(裒多益寡)를 강조했다.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곳에 더해준다는 뜻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 재물도 한 곳에 집중되면 부패하므로, 고르게 나눠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大同)사회를 만들자는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다. 되팔렘도 그 중의 하나다.
되팔렘/ 如心 홍찬선
천사와 악마의
잘못된 만남으로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
사람을 낳았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당근마켓은
기회가 불평등하고
과정이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되팔렘이 되었고
되팔렘이 되팔렘을 낳은
되팔렘 사회는 악마만 낳아
천사가 악마에 추방당했고
악마만 싸우다 함께 멸망했다
되팔렘은 네팔렘과 되팔다를 합해서 만든 말이다. 네팔렘은 천사와 악마의 혼혈로 인간의 기원이 되는 존재다. 되팔렘은 수요가 많은 물건을 많이 사 두었다가 비싸게 파는 ‘사재기 전매(轉賣)’를 낮춰 표현한 말이다. 필요한 물건을 샀다가 소용이 없게 됐는데 아직 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재활용할 수 있게, ‘당근마켓’에 파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 근처의 직거래 장터인 당근마켓은 사고 파는 사람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윈윈관계로 지속가능성이 있지만, 되팔렘은 전매자만 이익을 얻고 사는 사람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불공정하며 지속불가능하다.
마태효과가 확산되고 되팔렘이 만연해 소득분배가 불균등한 ‘너희들의 천국’은 건강하지 못하고 병든 사회다. 함께 하지 못하는 사회는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마련이다. 한때 세계 최강의 제국을 자랑했던 로마와 청 제국 등이 멸망한 것은 극심한 불평등과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도층의 부패 때문이었다. 마태효과보다 공자역설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철의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