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진나라가 천하 패권의 토대를 닦은 것은 촉나라를 합병한 뒤다. 만사가 그렇듯 키우기 위해서는 틀부터 키워야 하는 법이다.
당시 진나라의 군세는 이미 천하의 각 제후국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진나라는 천하를 갖기에는 아직도 미흡했다. 두 나라의 연합군을 상대하기 벅찼다. 즉 진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병합하려 하면 이웃나라와 힘을 합쳐 대항하면 됐다.
진나라 때문에 이웃나라끼리 힘을 합치는 외교가 빈번했다.
진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보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필요했다.
진나라 혜문왕 때의 일이다. 혜문왕은 전국시대 진나라의 26대 국군(國君)이자 초대왕이다.
당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위해 당시 진나라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한(韓)나라를 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촉(蜀)을 치는 것이었다. 한나라는 크고, 촉은 작고 힘은 없지만 토산물이 많은 곳이었다.
전자는 장의가 주장했고, 후자는 사마착이 주장했다.
혜문왕 앞에서 둘이 각자의 주장을 폈다.
먼저 장의가 말했다.
"우리가 먼저 위, 초 두 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군사를 보내, 한나라의 환원산과 구씨산의 요새가 고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 둔류의 길을 막고 위와 초나라에게 군을 동원해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합니다. 특히 초나라에게는 한나라 도읍 남정을 치도록 합니다. 우리 진의 군사는 한나라 신성과 의양을 공격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나라를 위협해 구정의 보물을 얻습니다.
그 뒤 위와 초 두나라가 점령한 땅들까지 빼앗으면 진나라는 천하의 패업에 성큼 다가서게 됩니다. 주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구정까지 얻으면 천하 제후들이 진나라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왕업을 세우는 일이자 명분과 이익을 동시에 얻는 길인 것입니다.
반면에 촉나라는 서쪽의 편벽한 땅입니다. 오랑캐들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를 공격해봐야 크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본래 '명성을 다투는 자는 조정으로,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의 땅은 이익이요, 주나라의 보물(구정)은 명분입니다. 시장과 조정이 다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한나라 공격을 하지 않고 촉을 공격하신다니 이는 곧 왕업과 너무나 먼 길입니다."
사마착이 반론을 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부터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면 그 땅을 넓히는 데 힘을 써야 하며, 군대를 강하게 하려면 그 백성이 넉넉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천하에 왕업을 이루려면 그 덕을 넓히는 데 힘써야한다 했습니다.
이 세 가지만 갖추어지면 왕도는 저절로 따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진나라는 땅은 좁고 백성은 넉넉하지 못하니 먼저 쉬운 일부터 해야 합니다. 촉은 서쪽에 치우친 약소국이며 오랑캐들이 서로 다퉈 응집된 국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일부 부족은 포악해 서로를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우리 진나라가 촉을 공격하면 마치 이리나 승냥이가 양을 쫓는 것처럼 쉽게 점령할 수 있습니다. 병사들에게는 실전이 아니라 훈련을 하듯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얻으면 국토가 넓어지는 것이요. 그 재물로 백성을 넉넉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조그마한 나라 하나 집어삼켰다고 해서 천하가 우리를 포악하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촉은 서쪽에 편벽한 땅이어서 동쪽 제후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촉의 백성들은 잔인한 오랑캐 부족들의 손에서 해방된다고 좋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일거에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는 행동이며, 명분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를 치고 주나라 황실의 천자를 위협한다고 하니, 성공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 실패할 경우 천자를 위협했다는 악명만 얻을 뿐입니다. 보장된 이익과 보장되지 않은 이익 둘 중 어느 것을 취하시겠습니까?"
두 주장 가운데 혜문왕은 장의의 것을 버리고 사마착의 것을 따랐다. 사마착의 분석 그대로 촉은 손쉽게 진에 병합됐으며 진은 더욱 부강해졌다. 부강해진 진은 실제 왕업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다.
한자에 기유(覬覦)라는 말이 있다. 야심을 품는다는 뜻이며, 분수에 넘치는 것을 욕망한다는 의미다.
기유는 먼저 마음을 들뜨게 하고 몸을 피곤하게 해 자신을 서서히 망친다.
현인은 길을 떠나기 전에 멀리 목표한 것을 보고, 길을 가면서 자기 발만 본다고 했다. 천리길을 가는 법이다.
천리길은 한 걸음부터이며, 계속 한 걸음일 뿐이다. 한 걸음들이 모이다 보면 절로 천리길을 간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