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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다이소라는 미니소 뉴욕증시상장 조달자금, 1억달러, 한화 1,100 억원

 

한국의 다이소는 일본의 100엔 (한화 환산 약 1,000원) 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알려졌는데, 1,000원 샵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다이소는, 중국에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2010년 전후부터때, 한국을 찾은 중국관광객들의 머스트 비짓트( MUST VISIT) , 명소였다

 

중국의 미니소는 한국의 다이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알려졌는데, 10 위안( 한화환산 약 1,700원) 샵으로 성공해 이제 미국 뉴욕시장에 상장을 준비한다고 한다.

 

자금모집 목표는, 1억 달러 ( 한화 환산 약  1,160 억원) 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매체들은, 뉴욕증시에 상장을 신청한 미니소의 올해 44살 창업자인 예꾸어푸 ( 叶国富)의 재산은 일년에 5억 위안 (한화 환산 약 860억원 ) 씩 불어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 미니소는 상표는 공교롭게도 한국 다이소를 본 뜬 것처럼, 사각형간판에 영어이름이 빨간색이지만, 창업자의 히스토리를 조금만 알면, 다이소을 본 떴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중국 미니소를 창업한 예꾸어푸 ( 叶国富)는 77년 생으로, 후뻬이성 스엔시 (湖北十堰市)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때 일찌감치, 세계의 공장으로 알려진 광저우시로 이주해 철강공장의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영업감각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당시 한달 영업수당으로 1만 위안( 한화 환산 약 170만원 / 당시 일반 직원들 월급은 약 1,500 위엔 내외) 을 받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2004년 그는 철강영업으로 벌었던 자금을 바탕으로 평소 꿈꾸었던 10위안 샵을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2004년에 여성소비자들이 갖고 싶어할 만한 작고 세련된 장식품들을 디자인해 판매하는 아이야야 ( 哎呀呀)라는 디자인 장식품전문점을 체인점을 창업했다.

 

창업 첫 날 10개 체인점을 계약했고 이후 확장을 거듭하면서,  중국 TV와 매체들은 중국 최초로 성공을 거둔 소매 체인점으로 전국에 그 명성이 확산되면서, 소매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나갔다.

 

2010년에는 아이야야 브랜드가, 중국에 진출한 월마트의 모든 지점에 입점했고, 2012년에는 중국전에 체인가맹점이 약 3,000개에 이르렀다.

 

아이야야 창업주인 예꾸어푸는, 이 때 중국증시에 상장을 목표로 하고 브랜드 리노베이션을 위해 , 20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의 유수한 디자이너였던 미야케 쥰야(三宅顺也)와 만나게 된다.

 

그는 일본 현지을 견학하면서 아이야야의 상장계획을 접고, 당시 일본을 석권하고 있던 유니클로와 무지양품 ( MUJI) 같은 종합생활용품 전문체인점을 창업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일본 디자이너를 공동창업자로 영입해 , 광동성에 본점을 둔 미니소( 名创优品) 를 창업했다.

 

 

미니소는 당시 유니클로와 함께, 일본에서 인기를 몰아가던 무인양품 ( 无印良品) 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중국식 한자이름 브랜드도, 무인양품과 똑같이 네 글자인 밍츄앙요우핀(名创优品) 으로 네이밍하고, 점포의 간판은 영어로 MINISO 를 유니클로와 유사한 감각의 빨간색 로고를 만들고, 그와 함께  미니소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일본글자의 간판을 동시에 내걸었다.

 

마치 메이드 인 재팬 제품인 것처럼 내세웠던 마케팅전략은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했고, 가맹점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어쨋든 중국 미니소는 2020년 10월 현재, 중국뿐 아니라 싱가폴 유럽등 전세계에 모두 4,200개의 매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에도 들어왔다가 2016년 신촌에 1호점을 내고 2년안에 70개 매장으로 확장했으나, 2018년 약 170억원의 적자를 내고, 한국회사를 새주인으로 찾아 인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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