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건
선(善)하다는 건
무엇일까?
왜 우린
선하기 힘들고
착하기 힘들다
하는 것일까?
사실 우린
모두가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안다.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선과 악을
알고, 느낀다.
우리 모두가
선하다 하는 건
같다.
그냥 본능적으로
같다.
강보의 영아(嬰兒)는?
선하다 한다.
그저
울기만 하고
보채기만 하는데
그래도
선하다 한다.
아기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좋으면 웃고,
나쁘면 운다는
알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안다.
아기가 남을
해치질 능력도
마음도 없다는 걸.
심지어
아기는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버스에 올라탄
노인에게
임산부에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좌석에
노약자, 임산부 보호석이라
써 붙여 놓지 않아도
일어서는
소녀는,
소년은,
우리는 선하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선(善)을
안다.
세상에 태어나
붉은 것을
모두가 붉다하고
푸른 것을
모두가 푸르다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선이
있어,
붉은 색처럼
항상
붉을 수 있을까?
항상
푸르기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도 아이는 선하지만,
어른은 악할 수 있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아이라 해도 자리를 양보할 땐 착하지만
컨닝을 할 때는 악하다 하는 것이다.
이렇듯 선은 한시적이고
항상 그렇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선하기 힘들고,
착하기 힘들다 하는 것이다.